•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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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이랄까, 8월의 인물을 살펴보다가 필자의 눈이 갑자기 멈춘 데가 있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극(劇)에 맞서서 슬기롭게, 엄청난 수의 유대인들을 구출해 내는 데 성공한 스웨덴의 외교관, 이른바 ‘스웨덴판 쉰들러’라고도 불리우는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란 인물이었다.
독일인이었던 오스카 쉰들러는 ‘쉰들러 리스트’란 이름의 전기소설(傳記小說)과, 동명의 영화(映畵) 때문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스웨덴판 쉰들러’ 라울 발렌베리는 그 쉰들러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의 유대인들을 구출해 낸 영웅적이고도 전설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아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울 발렌베리(1912~1947)는 지금으로부터 1백여년 전인 1912년 8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웨덴 1급의 사업체인 발렌베리 금융그룹의 후손으로 태어나 청년 시절 건축 관련 회사에서 일하다가, 당시 나치 독일 치하의 복잡한 국제 관계 때문에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 외교관 신분으로 몸을 담게 되었다. 이후 그는 그곳의 유대인 구출 작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문자 그대로 온갖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그 문제 해결에 매달렸다.
여권 작성에 필요한 서류 위조행위는 물론, 지휘자 급 독일 고관에게 때로는 무서운 협박과 회유, 매수 등 그의 젊음을 바쳐 한 사람의 유대인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데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태도였다. 아마도 인간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존귀하고, 그 때문에 유사이래 ‘최악’의 인간 학살극이 자행되고 있는 그때, 그곳에서 ‘최선’의 인명구출 방법이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서였던 것 같다.
이 상황을 일대위기로 파악한 나치 최대의 살인마(일명 ‘사냥개’) 아이히만이 히틀러에게 그(라울)의 처리에 대한 자문을 구하였다. 그때 히틀러는 아이히만에게 이렇게 답했다 한다. “그를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말라.” 히틀러조차도 이제 갓 30대에 진입한 스웨덴 청년 외교관 발렌베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히틀러는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어떤 단안을 내리기를 원치 않았던 때문이었다.
어떻든 발렌베리는 당시의 이런 여건을 최대한 이용해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을 거의 10만명가량이나 구출해 내었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숫자는 쉰들러가 유대인을 구출해 낸 숫자(최대 1,200여명)에 비해 상호 비교가 안 되는 숫자이며, 또 당시 ‘영국판 쉰들러’라고 불리어진 니콜라스 윈턴(1909~2015)이 체코 내의 유대인 어린이들을 구출해 낸 숫자 수백명(669명?)에 비해서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엄청난 숫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1945년 1월 부다페스트 외곽의 소련군 사령부에서 그를 만나자고 하여 그가 응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들은 그를 소련으로 압송했다. 이때쯤 해서 그에게는 독일의 스파이 혐의가 씌워져 있었다. 그의 약점을 이런 식으로 잡아놓고 소련 정부는 그에게 무례하게도 모국(某國)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이를테면 그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제 정보원으로 활동해 주기를 요청한 것이었다. 그는 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럼에도 소련 정부는 끝내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심문은 지속되었고 그의 건강은 30대의 젊음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망가져 갔다. 후에 그들은 그를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데리고 갔다. 여기서도 계속된 심문과 고문 때문에 실제로는 젊었던 그였지만 이제 그는 완전히 늙은 할아버지로 변해 있었다. 스웨덴 쪽에서 혐의를 보이자 수용소 측은 그가 건강하게 잘 있다고 둘러대었다.
소련 정부는 발렌베리를 어쩔 수 없게 되었다. 그가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그를 그대로 방면할 수도 없었다. 이판사판의 처지로 몰린 소련 정부는 결국 1947년 7월 그를 처치해버리고 말았다. 약을 타러 간다고 그를 딴 곳으로 유인해 내어서는 결국 치명적인 약물을 투여해 그의 목숨을 끊어놓고 만 것이다. 꽃다운 나이, 서른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라울 발렌베리는 오스카 쉰들러처럼, 또는 니콜라스 윈턴처럼 인도주의적인 ‘선행’으로 그의 젊음을 불태우다가, 그의 생애 말년에는 우리나라 윤동주 시인처럼, 또는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 문사처럼 타국 관리의 ‘악행’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린 불행한 운명의 소유자였지만, 그러나 그가 지금껏 발휘해온 강렬한 빛은 온 누리에 퍼져 우리의 갈 길을 밝게 인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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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의 어느 인도자-임 영 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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