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한국기독교 역사는 언제부터인가?
2016/09/29 16:5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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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선교역사 연대<年代>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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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한국기독교 선교 100주년?
올해 한국교회는 기독교(개신교) 선교역사를 131년으로 잡는다. 1985년에 한국기독교 선교100주년대회를 치루었기 때문이다. 1985년을 선교100주년으로 보는 것은 미국 장로교 선교사 알렌의 입국 해인 1984년과 1985년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가 입국한 해로 잡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기독교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 본명하다. 1800년대 초 서해안을 거쳐간 바질 홀(Basil Holl, 1816))이나 칼 구츨라프(Carl A.F.Gutzaff, 1832)의 선교역사는 두고라도, 1866년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으로 올라오면서 신약성경을 나누어주다 순교한 로버트 토마스(Robert Jemain Thomas)와 1873년 만주 우장에서 이응찬, 이성화, 배홍준, 김진기 등 의주청년들을 만나 복음을 전한 죤 로스(John Ross)의 선교역사는 분명히 한국기독교 역사임이 분명하다. 왜냐면 그들에게서 한국인 기독교인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사에서 왜 이들의 역사가 선교의 선구자로만 취급되고, “뜻은 있었으나 이루지 못한” 역사쯤로 취급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토마스의 성경을 받은 군인의 조카가 훗날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그가 후에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눌서 선교사와 함께 성서번역사업에 종사했던 이영태라는 청년이고, 마포삼열 목사가 1893년 평양에서 학습반을 조직했을 때 거기 나온 한 사람이 토마스 목사에게서 신약성서를 받은 사람이라는 기록도 있다.  또한 한국교회는 토마스 목사의 순교를 기념하여 1933년 9월 14일 ‘토마스 목사 기념예배당’도 세웠다.
또 죤 로스의 전도로 예수를 믿은 의주청년들은 1876년 로스의 매부 매킨타이어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1881년에는 서상륜도 세례를 받고 이들과 합류했다. 이들은 존 로스 목사와 함께 성서번역사업에도 참여했다. 그것이 한글성경 예수성교전서 로스역이다. 토마스와 죤 로스 그리고 죤 매킨타이어는 모두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소속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의 한국선교는 성공한 것이 분명한데, 왜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이들 의주청년들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한국기독교 역사는 1866년이 아니면, 최소 1876년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기독교의 역사는 1866년의 토마스로부터 시작되거나, 최소한 1876년 만주에서 로스의 전도를 받은 의주청년들의 세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들은 죤 로스의 성서번역사업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번역한 한글성경을 조선에 반입해 전도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국천주교의 역사는 이승훈이 1784년 북경성당에서 예수회 신부 그라몽(Louis de Grammont)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날로 시작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왜 1884년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이는 역사 왜곡이다.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선교맥이 끊기고 후에 들어온 미국 장로교가 이들을 흡수했기 때문에 생긴 왜곡이다. 1884년은 미국 장로교의 선교가 시작된 해이고, 1885년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공식적인 선교사가 입국한 해에 불과한 것이다. 1884년 미국 선교사의 입국 이전에 황해도 솔래에는 이미 교회가 서 있었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누가 세웠는가? 1881년 세례를 받은 서상륜이 1884년 자신의 고향에 세운 교회가 솔래교회이다.
솔래교회나 의주청년들의 전도가 자연히 장로교 선교에 흡수된 배경은 스코틀랜드 자유교회가 본래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장로교의 것과 교리상 별 차이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자유교회는 한국에서 독립적인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국선교의 열매를 맺은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그 후에 미국 선교사들이 입국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국에는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한국기독교 역사가 1884년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이런 역사 왜곡이 이루어진 이유는 한국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세력이 다른 교파에 비해 너무 커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역사가 곧 한국기독교 역사라고 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기독교 선교역사를 자파(自派)의 역사로 볼려는 이기적 시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 왜곡 바로 잡아야 한다
1876년 의주청년들의 세례로부터 한국기독교 선교역사로 본다면, 한국교회는 2076년이 되면 200주년이 된다. 그러므로 한국기독교의 선교200주년의 기념대회를 2085년에 할 것이 아니라, 2076년에 치르러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면 선교역사가 1876년부터면 어떻고, 1884년부터면 어떻다는 것인가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연대가 한국교회 신앙형태나 교회부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지라도 최소한 역사는 바로 세워 후손들에게 가르치자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한국기독교 100주년을 1985년에 치루는데 이의가 없었다는 것은 한국기독교 역사가들이 대체로 토마스나 죤 로스의 선교사역을 개신교 선교의 선구자로만 볼뿐, 본격적인 한국선교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선교의 첫 문호를 연 선교사들을 자연히 미국 장·감 선교사들의 입국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독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전체 6만 교회 가운데 약 75%를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장로교나 감리교의 결정이 한국기독교를 대표하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교파주의 교회이다. 수많은 교파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그 역사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발행인 강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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