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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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을 동시에 지닌 이들을 나는 ‘특민의식’의 소유자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마도 선민의식보다는 거기에 특권의식의 뜻이 더 보태어진 ‘특민의식’이란 말이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훨씬 더 실감나는 용어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서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선민의식’이란 “한 사회에서 남달리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잘사는 소수의 사람들이 가지는 우월감”이라고 풀이된다. 그리고 엣센스국어사전에 따르면 ‘특권‘이란 “특정인 또는 특정의 신분이나 계급에 속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우월한 지위나 권리”라 하였고, 그에 따른 의식을 ’특권의식‘이라고  하였다. 이를 우리가 좀 더 요약해 표현해 본다면 ’특권의식‘이란 “특정한 사람에게 특별히 주어진 권리로 인해 지닌 우월감”이라고 간략하게 표현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한 사회에서 남달리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잘사는 소수의 사람들이 가지는 우월감”이든, “특정한 사람에게 특별히 주어진 권리로 인해 지닌 우월감”이든, 특히 이 양자(兩者)를 함께 지니게 된 ‘특민의식’의 소유자들이라면 우리가 일상적이거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상대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존재들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그네들의 선민의식이 너무 높고, 또 특권의식이 너무도 강고(强固)한 언필칭 ‘특민의식’의 소유자들이겠기 때문이다.
앞서 참고했던 국어사전들에 의하면 선민의식의 소유자들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례로 들고 있고, 또 특권의식의 소유자들로서는 중세의 세습 귀족이나 승려들…이 예(例)로 내세워져 있다. 여기서 중세의 승려들이란 종교개혁을 전후로 한 시기의 유럽의 사제들, 곧 가톨릭의 신부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주교, 대주교, 추기경… 들의 경우라면 그들의 특권의식이 어떠했겠는가는 더 이상 상술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민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들 중에서도 특히 종교계(유대교) 지도자들의 경우 그 정도가 우심했다는 사실도 상식적인 이야기의 범위에 속한다. 특히 대제사장의 경우 가톨릭의 수장보다 못지않은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을 동시에 지녔던, 표현컨대 명실상부한 특민의식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점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 실례로 신약성서 시대, 곧 예수 시대의 대제사장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그의 사위 가야바 등이 그 점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재건된 산헤드린을 중심으로 활동한 수장(의장) 안나스와 가야바 대제사장들은 제사권은 물론, 입법/행정/사법의 3권까지 거머쥔 채 종교적인 선민의식과 정치적인 특권의식을 아울러 지녔던 강고한 특민의식의 대표적인 존재들이었음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1830)은 프랑스 대혁명 이래 7월 혁명 전야의 프랑스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적(赤)은 나폴레옹 시대의 군복(軍服)을, 흑(黑)은 왕정복고 시대의 승복(僧服)을 상징하는 색깔로서, 당시의 평민 청년들이 출세할 수 있는 길은 이 두 가지 노선 외에는 따로 없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은, 성직자들이 종교계는 물론 정치판도 좌지우지하게 된 복고왕정의 시대엔 자신도 신부(사제)가 되는 게 출세의 지름길이란 판단 하에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 야심만만한 청년이다.
당시 프랑스의 종교와 정치 양면을 좌우하는 위치에 있었던 가톨릭 집단은 제수이트파(예수회)였는데, 그들은 말하자면, 예수 시대에 제사권과 속권(정치권력) 양쪽을 거머쥐었던 산헤드린의 의장 안나스-가야바의 위치와 유사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즉 당시 프랑스의 제수이트파 신부들은 종교 면의 선민의식과 정치 편의 특권의식을 함께 지녔던 실로 강고한 특민의식의 소유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벨탑의 붕괴’ 사례가 확실하게 보여주듯이 하나님은 그런 특민의식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심판을 내리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통치 질서에 어긋나기 때문이며, 또 새로운 하나님나라 건설의 숙원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독일적(적극적) 그리스도교’의 사실상의 수장으로서 종교적 선민의식과 정치적 특권의식을 동시에 지녔던 소위 특민의식의 소유자 히틀러가 종말에 어떻게 몰락했던가를 역사는 그 실상을 잘 보여주었다.
거슬러 올라가, 종교개혁기에 그 강건하던 옛 가톨릭 특민의식의 아성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던가를 우리는 잘 보아 왔다. 또 더 거슬러 올라가, 예수 시대에 산헤드린을 배경으로 교권과 속권을 함께 주무르며 예수 처형에도 앞장섰던 이스라엘 대제사장들의 특민의식이 또 어떻게 붕괴되고 말았던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학생 줄리앙 소렐은 선배들의 잘못된 특민의식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려는 자신의 야심을 끝내 못 버리고 그 높은 사다리의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그 욕망 자체가 주님의 뜻에는 위배된 것이었기에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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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민의식 인사들이 들여다볼 창-임 영 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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