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성 만을 강조하던 로마 가톨릭 신앙을 떠나 만인사제론과 ‘오직 성경’을 주창한 프로테스탄트는 그 성경을 보는 눈에 따라 다양한 교파를 양산했다. 종교개혁 초기에는 루터주의(루터파)와 개혁주의(쯔빙글리파)와 칼빈주의(장로회파)가 먼저 일어났으나, 이어 재침례파, 환원파, 자유파 등 다양한 교파가 나타났다. 새로운 교파가 생긴다는 것은 그 신앙집단이 주장하는 신학이 기성 교파의 것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는 처음부터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해 왔다. 다양성 속의 일치란 ‘너와 내가 무엇이 다른가를 찾는 것이 아니고, 너와 내가 무엇이 같은가’를 찾는 것이다. 그러면 같은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믿음이다. 그것이 곧 복음이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이단’이란 말만 나오면 이성을 잃는다. 사실 이단은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교리라는 벽 앞에 세워보면 단번에 드러난다. 구태여 그것을 연구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알고 교회의 역사와 교리사 및 신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상식선에서도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남의 심오한 영성체험을 자신이 체험한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시 하는 풍토가 만연하다. 어떤 이단감별사들은 아예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는 이단 천지가 된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연구’라는 명목 아래 끝없이 이단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단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한국교회 안에는 짝 갈렸다. 정통교리로도 판단하기 어려운 기성교회 안에 도사리고 있는 ‘사이비’짓들이다. 교회 안의 사이비는 정통개혁주의를 표방하고 기성교회의 교권집단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진리와 사이비 신앙이 구분이 어렵게 된다. 중세교회가 그랬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이 함정에 빠져 있다. 자신들이 사이비짓을 하면서 남의 신앙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이다. 이 사이비짓은 꽤 이름있는 목회자들에게서도 발견되고, 교계에서 내노라 하는 인사들에게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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