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기복행위는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있어서는 평범한 소망이다. 재물의 축복과 질병을 고치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신에게 비는 것을 기복행위라 한다.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빌고, 남편이나 아들이 직장에서 승진하게 해 달라고 빌며, 지금보다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가게 해 달라고 비는 등 현세적 삶에서 결여된 구체적인 조건들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곧 기복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나의 구체적 욕망을 신적 능력으로 이루고자 하는 종교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기복이 있다. 따라서 신을 믿는 종교인이 기복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인간 삶의 행복을 위한 이런 기복행위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복음서의 예수님의 생애와 그 가르침 그리고 사도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이러한 반문은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은 이 세상의 현세적 삶에서 욕망을 채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죄로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상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고, 오히려 그 욕망들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그 속에 자기 중심적인 타락한 욕망을 갖고 있다. 이 욕망이 인간을 이기주의적 노예로 만든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그 세속적 욕망을 따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입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2,23)라고 가르친다.
기복주의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그 이상을 하나님나라에 두기보다 이 세상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는데 눈을 돌리게 만든다. 그리하여 성령님을 한갓 축복의 신으로 전락시키고 그 이름을 팔아 세속적 욕망을 채우는데 이용한다. 한국교회 신도들이 기복화 되고 미신화 되어가는 것은 목회자들의 기복주의 설교 때문이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대속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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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주의 신앙은 복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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