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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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청도 출생
예종탁(睿鍾卓 1936.8.30~) 목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각계리 327번지에서 부 예장기와 모 전두이 사이에 2남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대 역시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노략하여 이 백성들이 마음놓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가고 있었고, 조선의 청소년들에겐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경제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부모들이 처한 환경 또한 말이 아니었다. 농사터전에서 애써 농사를 지어 보았자 일제당국에 의해 공출당해야 했고 그들의 눈을 피해 조금씩 숨겨둔 양식으로 모두가 연명해야 했으니 그 고통과 생활고를 어찌 다 표현하랴.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부모님께서 일찌기 선교사들이 전해준 기독교 복음을 접하게 되어 처음엔 팔조령(八助嶺)이란 높은 재를 넘어 대구남성령교회(현 대구제일교회)로 39리가 넘는 거리를 왕래하며 신앙생활을 하였고, 후일엔 청도군 풍각면 소재지 송서(松西)교회에 출석하며 믿음의 초석을 다지었다.
종탁 소년의 가장 큰 축복은 바로 부모님들의 신앙의 그늘에서 성장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그는 어릴적부터 예배당에 나가 성경을 듣고 배웠고 찬송을 부르며 인격을 형성해 나갔다. 같은 면 소재지에 있는(학산리) 이서초등학교를 다니며 철없는 시절을 자연과 함께 마음껏 호흡하며 즐거운 유년시절을 보내고, 중학교는 군청 소재지에 있는 사립학교인 모개중학교로 진학 20리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사회는 희망이 없고 좋은 환경이 아니었으나 부모님의 교육열에 힘입어 순조롭게  중등교육을 받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종탁 소년의 심적 밑바탕엔 신앙이 큰 밑거름이 되었고 힘이 되었다. 어릴때 전쟁이 무엇인지 몰랐으나 6.25전쟁의 여파로 북쪽으로부터 종탁소년이 살고 있는 청도에까지 많은 피난민이 밀어닥쳤고 청도를 거쳐 정처없이 부산으로 피난가는 행렬을 목격해야 했다.

처음부터 목회자에 대한 소명감이 분명
동현교회 개척 설립·세계 각국에 선교사 파송
방송 및 문서선교에도 지대한 관심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세계선교비젼 가져

1953년 정전이 되고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갈 무렵 중학교를 마치고 대구에 있는 사립학교인 대륜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대륜학교는 민족주의자본에 의해 세워진 학교다. 그곳에서 조국과 민족의 중요성을 배우고 깨달았다. 일제하에서 태어나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일찌기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정상적인 교육을 받게 된 것은 동시대에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동료들에 비하면 종탁 소년에겐 주님의 은혜가 실로 컸다고 하겠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직영하고 있는 서울에 있는 총회신학교 본과로 진학하였다. 고향교회인 학산교회(현 이서교회) 이병철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지 10여년 만에 주의종들을 훈련시키는 선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으니 어느 누구보다 감격스러웠고 새로운 사명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총회신학교 제62회 졸업생이 되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충현교회(김창인 목사)의 교육기관에 속해 주일학교와 중고등부를 맡아 열심으로 목회수련을 쌓아ㅏ다가 이듬해 11월 6일 충현교회의 후원으로 개척 전도사로 파송을 받게되었다.
아직 예배처소를 마련하기까지 당분간 당시 충현교회 김경철 집사 개인 자택에서 6명의 개척교인이 모여 설립예배를 드리고 교회명을 서울 동쪽 언덕받이에 있다고 해서 동현교회(東峴敎會)라 명명하였다. 개척 이듬해인 1970년 4월 29일 서울시 강동구 마천동 3리의 3호에 성전 대지 100평을 매입하였다. 5월 17일 교회 대지위에 천막교회를 마련, 임시 예배처로 사용하다가 9월 17일엔 40평 규모의 첫번째 예배당을 마련하였다. 이어 1975년 6월 두번째 성전 대지 188평(마천동 184의 46)을 매입하였고 1976년 5월 13일 예종탁 목사 위임식을 거행했다.
1980년 4월 동서울노회에서 노회장으로 피선, 노회를 섬기며 행정의 역량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이듬해 9월 세번째 성전대지 452평을 송파구 방이동 64-12에 마련하였다.
교회가 은혜 가운데 점진적으로 부흥발전하여 지역 내에서도 중형교회로 발돋움하게 되자 예종탁 목사는 해외선교로 눈을 돌리게 된다. 1992년 2월 16일 아프리카 잠비아에 홍종란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계기로, 1994년 12월 11일엔 에콰도르에 이영, 김진희 선교사 1997년 3월 2일 AX국에 한요셉 이한나 선교사를 계속 파송하였고, 그 사이 1999년 11월 20일엔 어느덧 교회설립을 30주년 기념예배와 임직식을 거행하였다.
이와같은 현지에 파송하는 선교사업 외에도 후원선교와 총회세계선교회(G.M.S)와 S.I.M 한국국제선교회 기독교방송국(C.B.S), D.O.M 선교회, 송파기독교연합회와 송파교경협의회를 지원하고 있으며, 문서선교 일환으로 문서선교(아름다운 동행)를 위해 선교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은 예종탁 목사의 선교열정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다(동현교회 2017년도 교회일람 p.32참조).
2000년 9월 예장총회에서 예종탁 목사는 본교단 부총회장에 당선되었고, 이듬해 2001년 9월 18일에서 21일까지 서울 충현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6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총회의 행정책임자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그의 리더쉽을 쌓았다. 총회선거관리위원장과 총회 정치부장을 비롯 기독신보 이사, 송파기독교연합회 초대회장, 송파경찰서 경목, 기독교방송 제21대 재단이사장(2003.2~2006.3)을 역임하면서 한때 어려움을 겪었던 C.B.S를 본 궤도에 올려놓은 역량을 발휘하였고, 기독교텔리비젼(C.T.S) 방송국 공동회장을 맡아 봉사하였다.
예종탁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오로지 한 교회만을 위해 전생애를 복음의 멍애를 매고 충성한 모범적인 목회자로 교회행정가로 충성 봉사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2017.2.19 오후 1시 인터뷰).
이러한 그의 노고를 인정하여 미국에 있는 트리니티신학대학원으로부터 명예신학 박사(D.D) 학위가 그에게 수여되었다.
그의 목회철학은 그의 설교 <세계선교의 비젼을 가진 교회>(성경 사도행전 13장 1~5절)에 잘 나타나 있다. 안디옥교회를 예를 들면서 어떻게 세계선교비전을 이룰 수 있을까를 되새기고 있다. 첫째, 안디옥교회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마음을 가진 교회였으므로 세계선교비젼을 가질 수 있었다. 둘째, 안디옥교회는 희생정신이 투철했음으로 세계선교의 비젼을 실천할 수 있었다(역대 총회장의 증인 홍정이 편, 총회출판부 2005. p.289~292).
그가 재임했던 제86회 총회의 중요 결의안을 살펴보면 ① 제비뽑기 선기시행을 위해 총회임원 선거규정을 개정하다. ② 북한교회 재건위원회 명칭을 총회 남북교회교류 협력위원회로 변경하다. ③ 총회교육의 개혁과 질적 발전을 위해 총회교육 개발연구원을 두기로 하다. ④ 대신대 칼빈대 M.Div 소지자는 총신 신대원 두 학기를 이수한 뒤 강도사 고시 자격을 부여키로 하다. ⑤ 대한성서공회가 발간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은 재수정할 때까지 공예배사용을 유보하다. ⑥ 평동노회 분립키로(평등, 서북) 하다. ⑦ 교회간 거리 측정은 대지간 직선거리 300m 이상으로 하다. ⑧ 다단계 판매질의건은 교회에서 판매금지하기로 가결하다. ⑨ 전산문서(FAX)는 취급시 참고문서로는 가능하다. 원본문서만 정식문서로 인정할 수 있다. ⑩ 무지역노회에 소속한 교회와 목사가 지역노회 이적건은 공동의회 결의로 청원하면 교회와 목사를 이명해 주기로 가결하다, 단 고의로 이명해 주지 않을시는 지역노회 결의로 이면한다(제100회 총회 결의 및 요람 이승희 김창수 편, 예장총회 사무행정국 2016. p.35참조).
예 목사 슬하엔 2남1녀가 있으며, 장남 예성철 목사는 아버지가 개척 설립한 동현교회의 바톤을 이어받아 성실한 목회자로 성장해 가고 있고, 차남은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해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예종탁 목사는 37년을 오직 한 교회만 은혜롭게 섬기고 2006년 3월 11일 원로목사로 추대 받았다.  필자가 볼 때 예종탁 총회장이야 말로 경북의 오지 청도(淸道)라는 개천에서 나온 한국교회의 용의 자리를 차지한 걸출한 기독교지도자라 칭찬할만한 신실하고도 겸손한 성직자 가운데 한 분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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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제86회 총회장 예종탁(睿鍾卓)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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