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④ 돈이 하나님 다음 중요하다는 ‘물신주의’
2017/05/02 17:2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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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기독교 가치관 바로 가르쳐야 물신주의 극복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은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타락”

“하나님 다음 돈이 중요하다”(?)
“유전가사귀(有錢可事鬼)”라는 말이 있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배금주의 또는 물신주의(物神主義, Mammonism)를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어떤 목사는 교인들을 향해 ‘하나님 다음에 돈이 중요하다’고 설교한다. 이 또한 물신주의의 대표적 표현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신주의가 한국교회를 점령한 것은 80년대 이후이다. 교회가 급성정 하는 과정에서 돈만 있으면 소위 ‘하나님의 일을 무엇이든 폼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저급한 성공주의 가치관이 목회자들 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기복주의 설교와 맞아떨어져 강단에 또아리를 틀었다.
그리하여 12월 31일 자정이 되면 송구영신예배에서는 전교인들의 특별헌금 봉투를 강대상 위에 올려놓고 목사와 장로들이 둘러서서, 목사가 “강단에는 축복권이 있은즉 오늘 안수받은 장로님들과 주의 종이 헌금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선포하면, 교인들은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심은 대로 거두고’ ‘목사의 축복권에 따라 새해의 명암이 갈라진다’는 점만 강조될 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구원의 은혜나, 그간 인도하신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감사, 또는 지난 한 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웃에 대해 어떤 봉사적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회개나 반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구약성경에는 제시장의 축복도 있고, 신약성경에는 지도자들의 축복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축복권이지, 제사장이나 목회자만의 독점적 축복권이 아니다. 더우기 예수님은 ‘강단의 축복권’을 어디에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강단의 축복권을 말하는 것은 개혁주의 교회의 신학도 신앙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면서까지 극복하고자 했던 제사장 종교의 폐단이 부활하는 것이다. 굳이 강단의 축복권을 말한다면, 그것은 강단에서 구원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가치관은 세상 것과 다르다
한때 인류의 유토피아였던 유물론 공산주의는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를 모두 부정하고, 현상세계에서 쟁취할 수 있는 물질을 숭상하는 물질주의의 대표적 사상이다. 그와함께 지금도 세계를 움직이는  유신론 자본주의 역시 물질적 생산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상이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는 둘 다 물질의 생산을 최상에 두는 물신주의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자리는 없다. 오로지 인간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지상의 목표요, 최고의 가치이다.
기독교는 이들의 목표나 가치와 전혀 별개의 가치관을 가진다. 성경이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전 10:31)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의 최고 가치는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는 정의는 기독교의 가치관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는 물질의 생산도, 극대화 한 경제적 이윤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하나님 다음에 돈이 중요하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오로지 하나님 뿐이지, 하나님 다음에 둘 수 있는 가치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자본주의 아닌 신본주의이다
근대 기독교는 유물론 공산주의에 맞서 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를 친구로 여기고 자본주의의 가치관을 비판없이 수용했다. 그러다보니 교회 안에도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게 들어앉아 돈 있는 사람이 인정받고, 돈이 있어야 교인노릇도 할 수 있다는 자조(自嘲)도 만들어 내고 있다. 부자가 한사람 교회에 들어오면 목회자나 교인들이 그에게 아부하듯이 대하는 태도는 교회의 영적 권위를 훼손하는 일이요, 교인 간의 계층을 만들어 불신을 조장케 하는 비기독교적 태도이다.
교회는 믿음의 사회요, 오로지 신앙에 의해 통일된 평등사회이다. 모든 표준은 믿음에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히 11:16). 그러므로 교회의 최상의 덕목은 믿음이다. 따라서 교회의 직분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맡겨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교회에서 직분이나 대우가 돈이나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의해 좌우되고, 또 중직이 맡겨진다면 이는 이미 교회의 근본을 이탈하는 것이다. 많은 교회의 분쟁이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개교회에서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단이나 연합단체에서도 돈을 가진 사람이 발언권이 서고, 대표자리를 차지하며, 인정을 받는다. 그런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진리의 터’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고, 세속적 물신주의에 터 잡고 있는 것이다.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세상은 천민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타락된 세상이다. 거기에는 도덕성과 건전한 가치관이 결여되어 있다. 교회는 교인들로 하여금 어떻게 돈을 벌어 어디에 쓰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이 돈의 노예가 되는 물신주의에 빠지지 않고 돈을 부리는 청지기 정신에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돈이라고 다같은 돈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들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신 23:18) 라고 했다.
<강춘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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