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5 민족복음화라는 이름의 상업주의
2017/05/19 11:0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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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선교의 ‘상업주의화’ 기독교신앙 본질 훼손하고 있다
이단감별사들의 ‘기적종료론’ 성령의 능력목회 기(氣) 꺽어

지금 한국교회는 민족복음화란 이름의 상업주의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 들어 민족복음화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민족복음화’를 내건 대형집회도 여럿 치뤘다. 그 결과 교회의 숫적 성장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교회를 상대로 하는 온갖 세속적 장시치들이 기독교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00선교회’니, ‘××선교회’니, ‘△△선교회’니 하는 간판들이 저들 장사꾼들의 이름으로 수백 수천개가 내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 같이 선교와는 관계 없는 장사치들의 간판일 뿐이다.
그래도 그런 간판은 그런대로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문제는 장사치들이 아예 기도원이나 교회의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한다는 점이다. 이름하여 민족복음화라는 상업주의가 본격화 된 것이다. 개척교회를 사고 파는 것은 약과이고, 교회 자체를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집단들도 생겨났다. ‘민족복음화’가 기복적 상품화 된 것이다. 이는 70-80년대 급성장 과정에서 교회 안으로 유입된 유아기적 형태인 기복주의, 신비주의, 은사주의, 열광주의, 맹신주의가 낳은 신앙의 상품화에서 온 것이다. 이런 상업주의는 한국 기독교를 많이 변질시키고 있다.
교회가 세속적 이익집단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대교회는 헌금 거두어 선교와 봉사와 교육에 투자하기 보다, 교육관이니, 수양관이니 하는 부동산 투기와 돈 될만한 세속적 사업에 투자하고, 그 돈으로 교인을 한 사람이라도 더 자기네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웃 교회 교인들을 유혹해 간다. 이는 기독교인만을 공략하는 여호와의증인이나, 신천지 이단과 크게 차이가 없다. 이런 교회는 그 간판이 무엇이라 했던 상관없이 세상에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습은 아니다. 이는 결국 교회라는 간판아래 모이는 ‘상업적 이익집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장사꾼들 호객하듯이 교인 서로 뺏기 경쟁을 하며 목회성공의 허세를 부릴 것인가. 부자 교회로 불리는 대형교회들은 교인도 예산도 넘쳐서 오히려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가난한 나사로 교회로 불리는 소규모 교회들은 몇 안되는 교인들을 그나마 조금 키워서 교인노릇 할만 하면 대형교회로 속속 빠져 나가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말할지 모른다. 그 목회자의 능력이 그것 밖에 안되는 때문이라고. 아니다. 이건 절대로 정상적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다. 기독교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두가 ‘하나’이다.
21세기 한국교회가 민족사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500년, 1000년 구원의 방주로서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기복주의, 신비주의, 은사주의, 개교회 이기주의 등 상업주의를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로서 건강한 신앙을 지켜 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고민은 소명자로서 한국교회 지도자인 목회자들의 몫이다.
 
성령의 능력을 상품화 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더 이상 70-80년대의 폭발적 부흥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70~80년대의 폭발적 부흥은 성령의 능력에 의한 부흥이었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 이유로 한국교회 목회현장에서 더 이상 성령의 능력이 활동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 하나는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바꾸는 상품화 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직업적 이단감별사들로 인해 목회현장이 성령의 능력을 제한받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성령운동은 민족복음화란 이름의 상업주의로 변하여 성령의 능력은 곧 돈으로 바뀌어 교회를 부요케 했다. 이때부터 교회는 ‘돈이 있어야 선교도 하고, 하나님 다음에 돈이 중요하다’며 돈을 챙기기 시작했다. 땅을 사고, 예배당을 크게 늘리고, 선교지를 확대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서 돈이 넘쳐 망한 교회는 많아도, 돈이 없어 망한 교회는 없다. 돈이 판을 치니 성령이 활동할 공간이 없게 된 것이다.
둘째는, 70~80년대 불같이 일어나던 성령의 능력목회는 모두 이단으로 몰렸다. 그것도 자기 자신의 신앙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얼치기 ‘직업적 이단감별사’들에 의해 공격을 받은 것이다. 그들 이단감별사들은 모두 오늘날 성령의 기적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즉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더 이상 하나님의 기적은 없다는 ‘기적종료론’을 믿는 이성주의자들이다. 총회는 이들의 직업적 농간에 놀아나 무고한 목회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해 기를 꺾었다. 그로인해 약삭빠른 젊은 신학생들은 ‘우리 총회가 그런 신앙운동은 이단으로 본다’며 창의적이고 다이나믹한 성령목회를 외면했다.
그리하여 작금 한국교회 젊은 목회자들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기 보다 자신의 얄팍한 지식과 재능에 의지해 목회를 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교회는 매말라 분쟁과 갈등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노회와 총회는 교권주의자들의 패거리 정치 집단화 하고 있다. 여차하면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고소하고, 노회나 총회에서 동료 간의 사소한 분쟁도 사법당국으로 끌고 간다.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니 한국교회에서 성령이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선교비’도 돈이 되는 일에만 투자한다
교인들의 헌금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펴는 복음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받치는 것이다. 그것이 주일헌금이건, 감사헌금이건, 선교헌금이건, 건축헌금이건 모두가 같은 것이다. 따라서 헌금은 오로지 복음전파를 위한 선교를 위해 사용되어야지, 세속적 이익을 위한 상업적 목적에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부자가 더 부자되려는 이익에 관심 갖는다. 이것은 어떤 물건을 팔지 않더라도 결국 상업주의이다. 성경은 “네 식물을 물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고 말한다. 복음을 위한 선교비는 이와 다르지 않다.
교회가 복음을 위한 선교비는 당장의 이익을 따지지 말고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기독교인이 많다보니 예사로 여긴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한 영혼이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만큼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 어렵다. 그러므로 교회는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 선교이다. 선교가 상업주의화 하면 기독교인의 가치관과 교회의 본질이 훼손된다. 더 이상 교회운영이 자본주의적 논리에 매몰되어 상업주의화 해서는 안된다.                           
<강춘오 목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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