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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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유럽에서의 카니발은 축제의 이면에 비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령 축제 기간 동안에는 서민들이 성직자나 군주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욕을 해도, 그들은 구금되거나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직자나 군주는 축제 기간 동안에 있었던 비판적인 소리를 참고하여 정책에 반영하였던 거지요. 이 때문에 축제 기간 동안에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달란트를 한껏 발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스트레스를 한껏 날려 버리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었지요.
이 축제에는 성직자와 군주와 민중이 다 함께 어우러져 축제가 끝난 후 전개될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보면 축제 때의 쓴소리는 성직자와 군주와 민중이 공통 분모적으로 다루어야 할 진실을 향한 정당한 의견이 분출되었던 셈입니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쓴소리를 보면서 민중의 목소리가 과거에 비하여 많이 높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쓴소리 이면에 감추어진 사랑을 망각할 때에 그것은 우리 사회에 분열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도자를 뽑고 쓴소리를 하는 것은 다같이 잘 살아 보자는 관심 때문일 겁니다. 개인과 민족과 나라에 상관이 없다면 그러한 일에 무관심하겠지요.
예수 그리스도가 위대한 점은 민중이나 이스라엘 분봉왕이나 로마 황제에게 다 통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사랑으로 해결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국가간의 이익 다툼이나 분단 현실이나 동서간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근본 자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너와 나가 한마음으로 가져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여야간의 갈등이나 정책 갈등의 이면에 진정으로 작용해야 할 것은 너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럼 사랑은 어디서 단련되어야 할까요. 용광로에서 불의 담금질을 거쳐 순금이 나오듯이, 개인의 인품을 단련시키는 기본적인 장소는 가정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은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등 가족이 만나 생동하는 기쁨을 나누는 곳입니다. 이 가정에서 개인이 사회에서 할 역할의 추임새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살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지요. 남자·어린아이·청년·장년·노년·남편·아들·아버지·할아버지·교수·시인·평론가·친구·동호인 등 참으로 개인이 많은 역할을 상황에 따라 하면서,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가정에서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이는 신생아를 보러 갈 때나 지인의 장례식에 가 보면, 사람들이 가족 중심으로 모여 있는 데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던 딸아이가 필자의 집에 잠시 와 있습니다. 1년 동안 기다리던 아이가 안 생기자 인공 수정을 하기 위해서 집에 온 것이지요. 딸아이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가정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生과 死의 결정은 주님이 하시는 일인지라, 부부가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은 부부만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지요. 그래서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새벽 기도를 열심히 다니는 중입니다.
<시편>에 “새벽을 깨우리로다”란 말씀이 있지요.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6-11).
새벽은 우주에 놓인 내 영혼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의 삶이 육적이나 물질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영혼의 세계와 균형을 유지할 때에 나의 시야가 넓어지고 세계를 향한 힘이 생기게 됩니다. 이 새벽에 주어지는 힘으로 너와 나가 함께 하는 우리와 민족과 세계를 바라보며, 오늘도 나는 가정에서의 멋을 생각해 봅니다.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가족이 나눌 기쁨을 찾아 식탁 위에 앉습니다. 그 날 하루 있었던 일상의 고마움을 가족에게 알리고,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내일 당장 죽음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생각하고, 내 안에 자라고 있는 사랑이 실천으로 옮겨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지으며, 주어진 시간에 주 앞에서의 진지한 마음으로 일상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석양의 빠알간 햇빛과 함께 하루 일을 마친 이들이여! 이제 살 맛 나는 가정을 그려 보십시오. 그리고 신뢰의 향기와 함께  가족들의 인간미를 만나 보십시오. 주님이 동행하는 가운데 너와 나가 행복해 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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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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