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제85회 총회장 김동권(金東權) 목사
2017/06/01 13: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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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서 일생을 목회한 청빈한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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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대전 출생
김동권(金東權 1941.1.5~) 목사는 충청남도 대전에서 태어나 영동에서 자랐다. 불신가정이였지만 어린 시절을 꽤 똘똘한 소년으로 성장하였다. 10대 후반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따라 처음 교회에 발을 드려놓았다. 그 후에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좋은일이 어디 있겠는가? 라는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그에겐 청소년기에 흔히 몰아닥치는 방황의 시기를 큰 어려움 없이 잘 넘기는 계기가 되었고 훗날 그때가 하나님의 부름이 아니었나 생각하였다.
그가 태어났던 시대적인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 동·서 냉전기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었고,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 주위 강국들의 패권을 겨루는 환경 가운데 이 나라 역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좌왕우왕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어느 누구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어두움의 그늘이 짙어만 가는 미래가  보이지 아니하는 암울한 시기였다.
김동권 목사는 총회신학교를 졸업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59년 경남 진주 출신 사모와 결혼한 후 진주 지역에 있는 칠암교회(1955년 3월 6일 설립) 부교역자로 부름받아 진주땅을 밟게 되었고 3년동안 사역한 후 지역 내의 모교회격인 진주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 2007년 2월 12일 원로목사가 되어 은퇴하기까지 32년동안 오직 한 교회에서만 목회사역을 감당한 목회자의 모범을 보였다.
그가 시무했던 진주교회는 호주장로교선교회 소속 거열휴(Dr. Hugh Currell, 巨烈烋, 1902-1943) 선교사와 박성애(朴晟愛)가 전도하여 북문(北門) 안에 초가 3칸을 예배처소로 정하고 예배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1906년 진주읍 대안면에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18년 진주읍교회가 전도회를 조직하고 여전도인 김성심(金誠心)을 청하여 진주지방에 본격적인 전도를 하였다.
진주에 복음을 전해준 거열휴는 아일랜드 로얄대학(Rayal College)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1902년에 내한하여 1915년까지 의료선교사로 사역하였다. 처음엔 부산지부에서 활동하며 조선어를 익혔다. 당시 부산에는 미국 북장로교에서 이미 의료선교를 하고 있었음으로 커렐은 진주로 임지를 옮겨 진주지부를 이끌어가며 선교하였다.
1907년 안동학교와 정숙학교를 설립하였고, 1911년엔 본국에서 모금해 와 베돈병원(Payton 기념)을 완공하였으며, 1913년 세브란스전문학교 교수와 진주성경학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1915년 8월엔 진주읍교회를 조직 교회화 해 초대 당회장이 되어 오늘의 진주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내한선교사 총람 김승태, 박혜진 편, 1994, p.191 참조).

진주 지역은 호주선교사 거열후가 씨 뿌려
진주교회 맡아 32년간 한 교회서 목회
성경이 가르치는 농사의 원리 따라 ‘평생목회’
총신대 재단이사장 및 운영이사장 역임
“한국교회 강단에서 ‘내세신앙’ 훼손되고 있다”

김동권 목사는 진주교회를 목회하며 명실공히 경남서부지방의 모교회로써 선교와 교회성장의 모범이 되었고, 교회가 성장해 감에 따라 교단 대사회적인데 이르기까지 역할을 단단히 감당해 나갔다. 그는 진주노회 구성원으로써 후배들에게도 존경받는 지도자로 발돋음 하게 된다.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진주교회를 섬기면서 그가 속한 진주노회의 노회장으로 10회기가  넘는 노회의 성장 발전에 이받이 한 것만 보아도 그의 인화(人和)와 지도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여겨진다.
얼마전 ‘평생목회’ 기자와 대담을 하면서 그의 목회관을 피력한 글을 옮겨본다. 그는 평생목회를 하면서 오직 성도를 위한 기도와 강단목회를 했다. 심방과 말씀을 잘 먹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목회를 하였다. 거처가 지방이어서 서울에 있는 총회나 여러 선교단체에서 활동해야 하느라 여러가지 어려움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목회자는 교회와 성도 앞에 겸손해야 한다. 정직한 목회가 가장 바람직한 목회다. 물질과 생활에 정직함은 물론이며 모범적이어야 한다. 거짓은 사탄의 속성이다. 정직함은 성령의 은사다. 하나님 앞에 충성도 책임감이다.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격월간 평생목회 2016년 10월~11월로 p.35 참조).
그는 최근 증경총회장 설교모음집에 기고한 갈라디아 6장 6~10절을 본문으로 “심은대로 거두리라”는 제하에 바울 사도가 언급한 농사의 원리를 인용,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첫째, 거두기 위해서는 심어야 한다. 본문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로다.
둘째, 심는 씨의 종류대로 거두게 된다. 본문 8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셋째, 때가 되면 거두게 된다. 본문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폐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며 거두리라.
넷째, 심는 씨는 작으나 거두는 것이 많다는 원리이다.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심는 것이 있어야 때가 되면 심은 종류대로 거두게 된다. 그러나 농부는 씨가 부실하고 성장 가능성 없는 것은 뽑고(눅 13:7) 새로 씨를 뿌리다(역대 총회장의 증언, 홍정이 편, 예장총회출판부 2015 pp.277~280 참조).
이 설교에서 그의 신앙과 목회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상하고 다정다감해 많은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불의와 진리에 어긋날 경우엔 무서우리 만큼 단호하다. 이것이 그의 철학이 아닐까?
그는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장과 운영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총회정치부장, 교단 원로목사 회장, 교단선거관리위원장을 비롯, 대한성서공회 재단이사장을 역임하며 교단의 대외적인 위상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가 진주교회 재임시엔 진주교회 70년 연혁사(1976. 12. 28)를 비롯 진주교회 80년사(1985. 11. 27)를 편찬, 교회의 과거사를 정리하였다. 1994년 6월 18일 현 예배당 기공식에 이어 1997년 3월엔 선교장학회를 조직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1997년 11월 15일엔 현 예배당 건축을 완공하고 헌당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1999년 1월부터 중국인선교회를 조직하여 고국을 떠나 진주지역에 기거하며 생활하는 다민족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중국어예배를 시작, 젊은이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나타내 보이기도 했다.
2000년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김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진주교회에서 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5회 총회장에 당선됨으로 교단의 수장자리에 올랐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목회자가 소명을 잃어버리면 국가와 교회는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오늘의 사회적 현실을 두고 외치는 선지자의 음성이라 생각된다.
그는 또 한국교회 강단에 내세신앙이 훼손되고, 보이는 현실에 치중하는 한국교회를 질타한다. 보는 예배가 아니라 겸손하게 희생이 따르는 드려지는 예배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지금은 물질에 집착하는 불신앙적 지도자들의 회개를 촉구한다.
그는 1938년 9월 27일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사건을 두고 그 날이야 말로 한국교회 치욕의 날이었다고 갈파한다. 작금에 이르러 해노회와 총회가 제명했던 주기철 목사의 복권선언이 있었지만 해벌 받아야 할 당사자도 없고, 당시 책벌에 앞장섰던 당사자(총대)들도 없는 장소에서 후배들의 복권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한국교회의 원로로써 후배들과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모습이 한국교회는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가 재임했던 제85회 총회 중요결의안을 살펴보면, ① 총회 임원선거를 제비뽑기로 하기로 가결하다. ② 미주지역 노회와는 친목유대 관계만 유지하기로 하다. ③ 총회주일 세례교인 의무금 불이행교회는 총대권 제한 및 제증명 발급을 중지하기로 하다. ④ 한기총과 한장연에 소속한 교파와는 연합운동을 지속하기로 하다. ⑤ 본 총회가 허용치 않는 여목사와 여장로는 강단에 세울 수 없다. ⑥ 본 총회가 설정한 윤리에 위배된 교직자(주초)는 강단에 세움을 금한다. ⑦ 여교역자가 여전도회 임원이 될 수 없다. ⑧ 목사 결혼 주례건은 신자에게 당회장은 재량으로 하기로 하다. ⑨ 교단 기관목사로 70세 정년제도가 적용되는 것으로 가결하다(제100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 이승희 김창수 편, 2016, pp.34-35 참조).
김 목사의 슬하에는 두 아들이 있으며 모두가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사업과 신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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