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통일-홍 성 표 목사
2017/06/23 13:3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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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사무실에는 ‘부활 통일’이란 네 글자의 붓글씨가 있다. 내가 전도사 시절에 한글서예의 대가이신 강희남 목사님이 글을 써 주신다 하기에 ‘부활’과 ‘통일’이라는 네 글자를 써 주시라 하였다. 아마도 필자에게 강 목사님께서 다른 글을 선물해 주시려 하였는데 나는 이 네 글자를 써 달라고 주문했던 것 같다.
이것은 내가 신학을 시작하면서 목회와 삶의 목표로 그러했던 것이다. 지금도 30여년이 훨씬 지나간 시간이지만 이 네 글자는 내 사무실 중앙에 걸려 있다. 필자가 잠시 미국장로교회 목회를 하는 동안에 이 글씨를 미국의 교회 사무실에도 걸어 놓았다가 귀국할 때 다시 가져 온 것이다.
그 글씨의 내 속마음은 이것이다. 나는 죽음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병이 치유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청년시절 열악한 산업현장에서 병들어 죽게 되었고 어느 집사님의 전도로 기도원에서 3년 이상의 세월을 보냈으며, 거기서 숱한 체험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 하였고 질병도 치유되었고 절망스럽던 수많은 시간들을 이만큼 극복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삶의 목표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인데 그것을 부활의 복음으로 정한 것이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처형에서 온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서 믿음이란 헛것이며 거짓말이다. 물론 부활이 어떤 부활인가의 문제는 우리에게 남는다. 온전히 죽고 온전히 변화된 신령한 몸, 소망의 부활이다. 그 소망의 부활만이 아니라, 개인만의 부활만이 아니라 창조주의 피조물 전체의 부활과 역사의 부조리한 모순들이 해결 되는 생명이 살아있는 부활, 사람만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가 공존해야 할 자연과 생태계 전체의 부활, 사람들의 탐욕으로 깨어진 나와 너의 관계의 부활 그래서 생명 세계의 온전한 부활이 있어야 한다. 부활은 모든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절망을 극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 희망의 복음을 전하고 사는 것이 필자의 삶과 목회의 목표이며 목적인 것이다.
다음으로 왜? 통일인가? 그것은 운명적으로 주어진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분단의 벽을 헐고 진정한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한반도의 모든 분열과 씻기 어려운 상처는 분단에 귀속되어 있다. 남북의 체제 지도자들은 분단을 자신들의 정권연장과 유지 보존으로 악용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등, 주변의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분단을 그들의 세계 패권세력의 기본 자료로 악용하고 있다. 한반도를 그들의 대리전쟁 터로 생각해 온다. 남북의 긴장을 조성하여 상상할 수 없는 살상무기들의 판매를 강요하고 국민들과 민중들을 불안에 떨게 하며 서로를 의심케 하고 이간질과 분열정책을 획책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교회들은 그 무엇보다도 진정한 자주와 민주, 민족주체, 역사의 주체인 민중들을 통한 통일기도를 해야 한다. 민중은 역사와 사회적 가장 낮은 계급이나 계층이 아니다. 역사를 떠받들고 사는 시대마다의 주체인 것이다.
목회의 기도 제목들은 많다, 개인의 영혼구원일 수도 있고 현실적 모순들을 극복하는 자기모순으로부터의 승리를 이끌어 내는 기도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구원을 넘어서 사회적 구조악과 국가나 정권, 불의한 자본의 착취구조 적폐를 청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한반도에서의 목회의 궁극적 목적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과 함께 민족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의 평화통일을 반대하고 흡수통일을 운운하며 전쟁이라도 불사해야 하는 것처럼 역사의 무지에 빠져있는 교회와 목회의 설정은 그야말로 반성서적이고 반 역사, 반인간적이 아닐 수 없다. 목회자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른 역사인식이 결여 되었다면 절대로 바른 목회를 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세계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분단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고서는 진정한 생명의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무엇이 이단인가? 역사에 대한 무지가 이단이다. 개인의 아픔과 상처들의 치유 뿐 아니라 민족의 분단을 치유하는 목회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한 사람의 구원의 문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적 폭력이나 구조악을 통해서, 민족의 분단구조를 통해서 신음하는 치유를 외면하는 것은 구원의 일부분을 터치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학교에서나 교회 강단에서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용지물이다. 종교개혁을 외치면서 우리가 처한 분단의 역사의 진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역사와 민족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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