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제68회 총회장 배재운(裵在雲) 목사
2017/07/14 15:4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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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피난민 교회 맡아 한평생 목회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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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은율군 출신
배재운(裵在雲 1913. -1995.2) 목사는 황해도 은율군 은율(殷栗)이란 조용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은율은 산야에 가을이면 밤나무에서 밤이 많이 열리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다.
은율군의 지형을 잠시 살펴보면 동쪽은 안악군, 서쪽은 송화군, 남동쪽은 신천군, 북쪽으로 황해와 대동강 하구와 연결되어 있다. 이곳 역시 가까운 평양에 기독교 복음이 일찍 들어옴으로, 일찌기 복음을 가지고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와 전한 곳이다.
재운 소년은 이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부모들의 농사일을 거들며 자랐지만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친구따라 교회가 무엇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에배당에 출입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전도자들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계속해 교회에 다니다보니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어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처럼 재운 소년은 친구따라 영생의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알게되어 성수주일 지키기에 열심을 다했다. 그러나 제사를 못 드린다고 하여 부모님과 친척들로부터 생각하지 못한 핍박을 받게 되었다. 재운이 태어난 시대 역시 일제하여서 조선말도 못쓰게 하고 이름과 성까지 일본식으로 바꾸라는 등살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주일이면 예배당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선교사님들이 조선말로 설교하는 말씀에 위로를 받고 힘을 얻기도 하였다.
북한에서의 신앙생활은 점점 어려워져갔다. 북쪽은 공산당들이 정권을 휘어잡고 예수 믿는 사람들과 대립도하며 핍박하기 일쑤였다. 소련군들이 신의주와 평양을 점령하고 정치를 펼치기에 이르렀고 애국지사들과 많은 지주(地主)들도 앞다투어 남쪽으로 피난을 가거나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러시아로, 멀리로는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북쪽사회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리만큼 점점 혼란이 가중되었다.
배재운 청년도 친지들과 함께 3.8선을 넘어 와 잠시 서울에서 머물며 살고 있었으나 전세가 기울어져 남으로 남으로 정처없이 설음많은 피난민이 되었다.
그는 피난 중에도 다행히 대구 서문교회에서 개교된 총회신학교를 찾아가 어렵게 고학을 하면서 3년 과정을 하나님의 은헤로 공부할 수 있었다. 전쟁통에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하는 모든 것들이 원만하지 못하였다.
총회출판부에서 펴낸 ‘역대 총회장의 증언’이란 설교집에 단 한편 남은 설교를 보면 그의 일생을 그대로 토로한 것 같아 읽다가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성경본문 사도행전 7장 30절~38절, ‘광야교회’란 제목의 설교에서,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에 있었다(38절).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고 하시었다. 이로 보아서 교회는 생명의 도를 받아서 하나님께 제사와 경배를 드리는 장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선조들이 하신 일들을 더듬어 보고 오늘 우리도 거기에 맞추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첫째는 노아의 방주교회입니다. 사십일 사십야 내린 홍수로 온 세상이 멸망받았지만 노아의 8식구는 믿음을 지켜 구원을 받았습니다.
 
6.25 피난 중 대구서 총회신학교 졸업
부산 광안제일교회 피난민 교회 맡아 목회
지역사회 봉사로 내무부장관 표창 받아
“NCC계 교단과 강단교류 할 수 없다” 결의

둘째는 아브라함이 드린 모리아 산상교회입니다. 창세기 22장에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에게 대신 수양을 예비해 아들 이삭을 살려주신 것처럼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다니엘의 가정교회입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늘 기도했습니다. 사자굴에 던짐을 당하고 풀무불에 던짐을 당해도 기도함으로 살아났습니다(단 6:10~17).
넷째는 사무엘의 제단교회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도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화께 기도하리라(삼상 7:5). 이어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미스바와 센사이에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썼다(삼상 7:5).
다섯째는 다윗의 목양교회입니다. 다윗이 양을 치면서 조용히 기도한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왕으로 삼은 목양교회입니다(삼상 16장).
여섯째는 솔로몬의 성전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솔로몬을 낳기 전에 평강의 사람이라고 계시하고 알게 하시어 그로하여금 성전을 짓게 한 것이 솔로몬의 교회입니다(왕상 8장). 위의 교회를 통틀어 광야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설교 속에 배재운 목사의 생애와 신앙과 삶이 녹아진 핵심이 들어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불신가정에서 태어나 못 배우고 못 입고 살았지만 여호와를 알게되고 예수님을 믿게되어 축복을 누리게 된 자신의 진심이 담긴 간증설교가 아닌가 생각된다(역대 총회장의 증언, 홍정이 편, 예장총회출판부 2015 서울초판 p.106~120 참조).
그의 목회사역을 잠시 일별해보면, 부산 수영구 광안4동 741-1에 있는 광안제일교회에서 한 생을 다했다. 이 교회 역시 6.25 전쟁으로 부산까지 남하했던 피난민들이 주축이 되어 1955년 6월 6일 김감금 유정필 외 10여 명이 모여 한원돈 목사를 초대 교역자로 모시고 천막을 치고 개척한 교회였다.
배 목사가 부임한 날이 1963년 7월이었다. 신생교회로서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했다. 13년만에 겨우 사택(5평)을 마련해 배재운 목사를 4대 당회장으로 모시게 되었다. 배 목사 부임 3년만에 77평의 교회당을 기공하여 그해 12월 29일 교회당과 사택(목사관)을 준공해 교회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
이듬해(1967년) 12월 9일 성전봉헌예배를 드렸으며 함께 이명수 집사를 장로로 세워 당회를 보강하게 되었다. 1971년 11월 6일 임은식 장로 취임, 임창도 김동수 박정용 임성은 장로 장립이 있었고, 그동안 교인들의 증가로 1973년 3월 9일 새예배당을 지하1층 지상3층 연건평 200평 규모와 목사관 20평 관리집사 사택 10평 규모의 신축교회 기공식예배를 드렸다.
1974년 3월 1일 손성원 장로 장립과 황용이 장립집사 안수와 최강수 오진화 김은양 원미례 권사 취임식을 가졌고, 1976년 4월엔 목사관 2층 15평을 건축했고, 11월 10일  새성전 및 목사관 준공식을, 11월 27일 성전 봉헌예배를 노회와 당회가 주관 성대하게 치루었다.
1979년 12월 22일 황제면 안증임 이상덕 집사 장립이 있었으며, 1983년 11월 26일엔 안중일 이상덕 최동수 장로 장립이 있었고, 함께 황재홍 김철주 이한영 안수집사 장립과 조원숙 권사 취임식을 거행했다. 1985년 7월 11일 당회장 배재운 목사는 22년간 본교회 시무하고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배재운 목사는 총신대학교 이사를 역임하였고, 내무부장관으로부터 지역사회 봉사경력을 인정받아 표창을 받은 바도 있어 지역사회 유지들 사이에 덕망있는 지도자로 인정받았다(광안제일교회 2017년도 요람 p.31-32 참조).
이러한 그의 희생과 봉사를 교단이 인정하여 1988년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서울평안교회에서 모인 대한수교장로회의 제68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의 자리인 총회장에 당선되었다.
그가 재임했던 제68회 총회 결의안을 요약하면, ① 총회 개회일자를 9월 셋째 주일 후 화요일 오후 6시 30분에 개최하기로 하다. ② 1만 교회운동 중앙위원회 제1차~8차까지의 경과를 보고 하다. ③ 통일교 호칭문제는 문선명집단, 문집단으로 칭할지언정 통일교단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하다. ④ 군산노회 분립을 허락하다(군산노회·이리노회로) ⑤ 청년회를 청장년회로 개칭하고 회원의 연령은 20세~45세까지 하기로 하다. ⑥ 선교100주년기념<한국교회교육100년사>를 발행키로 하다. ⑦ 재판국을 제외한 16개 상비부원 수 27인을 33인으로 규칙을 수정하기로 하다. ⑧ 무지역노회는 가급적 속한 시일내에 지역노회로 귀속하기로 하다. ⑨ 강단교류 할 수 있는 교단은 비NCC계의 교단이며 본 총회가 규제한 NCC교단 인사를 초청하여 학술세미나도 못한다(단 총회가 인정하는 연합집회는 예외로 한다.)
배재운 목사는 월남하여 고학으로 신학공부를 하고 오직 한 교회에서 평생 승리로운 목회사역을 마치고 1995년 2월 주님의 품에 안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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