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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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늘부터 몇 차례에 걸쳐서 비 서구의 대표적인 선교신학자인 데이비드 보쉬가 엮은 글을 중심으로 바울 선교가 가진 중요한 요소들을 기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선교신학의 기초가 더욱 튼튼히 서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글을 엮어 감에 있어서 데이비드 보쉬가 기술해 놓은 “변화하는 선교”가 상당히 인용될 수 있음을 먼저 밝힌다.
사도바울은 항상 선교사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주었다. 따라서 수년에 걸쳐서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바울이 지닌 의미에 관한 몇 편의 논문들이 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을 연구함에 있어서 자료의 활용은 항상 학자들의 논쟁거리이다. 즉  바울 서신들에만 집중할 것이냐 아니면 2차 자료인 사도행전을 첨가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 사도행전이 바울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신뢰할 만한 전승에 기초한 많은 자료들을 담고 있고, 결국 “바울에 대한 첫 주석”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은 바울에 대한 2차 자료이다. 그리고 1차 자료들과 2차 자료들을 섞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건전하지 않다. 바울 신학의 선교적인 차원이 항상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수년 동안 바울은 주로 교리 체계의 창시자로 간주되었다. 이어서 종교사학파의 등장으로 그는 주로 신비주의자로 간주되었다. 조금 후에 그 강조점은 “교회론적인” 바울로 옮겨 갔다. 점차적으로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또한 그의 서신들 속에서 우선적으로 선교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울의 신학과 그의 선교는 단지 바울의 선교가 그의 신학에서 “나왔다”는 의미에서가 아닌, 오히려 그의 신학은 선교적인 신학이며, 그리고 선교는 본질적으로 그의 정체성과 사상과 관련된다는 의미에서 “이론”과 “실제”로서 서로 관련되어 있다. 바울의 선교 이해는 보편적인 원리에 매달려 있는 추상적인 구조물이 아닌, “바울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준 첫 번째 경험에 의해 유발된 실재 분석이다”. 이것은 특히 바울이 자신에 의해 설립되지 않은 교회에 쓴 그의 유일한 편지인 로마서에 해당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바울 서신들의 “선교 본문들”을 찾고 분석함으로써 우리의 주제를 연구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신학 저술 전체를 조사해야 한다. 바울이 가장 복합적인 사상가이기 때문에 이것은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미 초대 기독교 저자가 이렇게 바울의 서신들에 관해 불평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벧후 3:16) 그것은 특히 진지한 성경학도들이 만나는 바울에 대한 많은 다양한 해석들을 고려할 때에 오늘날 결코 더 쉬운 일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초대 기독교 운동의 핍박자를 그 주된 지지자로, 예수님을 유대교의 위협으로 간주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한 사고가 바뀌게 된 사건은 무엇인가? 김세윤 박사는 다메섹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 사건을 통해서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과을 만났다. 몇몇 학자들은 우리가 바울의 다메섹 경험을 언급하기 위해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 이유로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회개는 종교의 변화를 암시한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그의 종교를 바꾸지 않았다. 우리가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은 바울의 당시에는 유대교 내의 한 분파였다. 둘째로, 아직도 주장되는 것처럼 바울을 그의 죄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자로, 결국은 그의 회심을 유발한 내적 갈등을 경험한 자로 묘사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1960년에 스웨덴어로 처음 발간된 고전적인 논문에서 스텐달은 바울의 다메섹 사건에 대한 그러한 “심리적인” 해석은 그 사건에 대한 현대의 전형적인 이해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득력있게 주장했다. 지난 몇 세기 동안에 루터의 눈을 통해서 바울을 읽고, 그리고 그것을 신약 속에 넣어 읽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새로운 모든 회심자들의 규범으로 선언함으로써 전형적인 서구의 회개 경험을 보편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필자는 오늘 바울의 자료가 갖는 중요성과 신학적 위치를 살펴보았다. 한국교회는 선교의 연속성을 위해서 선교사들의 활동을 역사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예를 들면 성기호 박사께서 노력하고 있는 “한국인선교사” 같은 잡지를 적극적으로 할용 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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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연구의 선교적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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