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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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기섹덱”이라는 말은 창세기 14장에 처음 등장하는 왕의 이름이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살렘 왕”이라고 지칭하고 있다(창 14:18). 전통적으로 “살렘”은 여부스 족속의 요새, “예루살렘”으로 알려졌다. 소돔에 살던 롯이 가나안 왕들의 전쟁에 휘말려 포로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그의 사병을 동원하여 단까지 추격하여 그의 조카 롯은 물론 그와 함께 사로잡힌 모든 자를 구출하여 귀향한다. 이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개선하는 아브라함에게 마중 나온다. 창세기의 본문은 멜기세덱을 가리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한다. “가장 높으신 하나나님”이라고 번역하는 히브리어 “엘 엘리온”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엘 오람”(영원하신 하나님), “엘 사다이”(전능자 하나님), “엘 엘로헤이 이스라엘”(엘, 이스라엘의 하나님) 등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이 예배하고 섬기던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이다. 따라서 그는 고대 근동 세계의 왕들처럼 백성을 통치하는 왕인 동시에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그가 전쟁에서 개선하는 아브라함에게 나아와 예물을 드리고 축복한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주이시여 아브람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 너의 원수를 너의 손에 넘겨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하라.”(창 14:19-20)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에게 모든 것 중에서 십일조를 드린다.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예물을 받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그는 누구인가?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흔히들 “나의 왕”이라는 히브리어 “멜키”라는 말과 “의롭다”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체덱”의 합성어라고 말한다. 따라서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첫째, 나의 왕은 의롭다. 둘째, 나의 왕은 체덱이다. 셋째, 밀쿠(milku)는 의롭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세덱”이나 “멜기”는 신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약성경 히브리서 7:1-3에서는 그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한 자이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렸으니, 그의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고, 다음으로 살렘 왕, 즉 평강의 왕이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    고, 생명의 끝도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히 7:1-3)
그는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분이라고 했다.
히브리서 7장에는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반차”는 반열, 품계, 신분, 등급의 차례란 뜻을 가진 한자어이다. 헬라어 “탁시스”라는 말은 히브리어 “디브라”를 번역한 것으로 “순서”(order), “계열,” 혹은 “배열”(arrangement)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시편 110:4에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 계열을 따른 제사장이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분명 메시야의 제사장적 신분을 예고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 오셨다. 그러나 그 제사장직은 심지어 아브라함도 십일조를 드릴만큼 높고 위대한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따른 아론의 계열을 따른 제사장이 아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아론의 육신적인 계열을 따른 제사장이 아니며,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닮은 멜기세덱의 계열에 따른 제사장인 것이다. 아론의 계열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구별된 제사장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불순종하고, 타락한 아담 부부를 찾아오시어 언약적 저주를 퍼부으시며, 그들에게 사망을 선고하고 벌거벗을 그들에게 가죽 옷을 입히셨다. 일종의 사형수에게 입히는 수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담과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동일한 사망 선고를 내리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기뻐하신던 세상이 하루 아침에 그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고 심판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을 대신한 새아담을 세워 새하늘과 새땅을 만들고 그가 만든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려는 구원 계획을 세우신다. 여자의 후손으로 그들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한 뱀의 머리를 짓밟게 하고, 아담의 죄 값을 대신 치루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겠다는 원복음을 주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 여자의 후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완성될 것이다.
그러면 이 여자의 후손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첫째, 그는 여자에게서 낳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뱀을 짓밟고 승리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뱀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뱀은 사람을 유혹하고 범죄하도록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단의 앞잡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은 사실상 사단과 대적하여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영적 존재여야 한다. 여자에게서 낳은 영적존재, 그는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여야 한다.
둘째, 그는 아담의 죄 값을 치루어야 할 자이다. 다시 말하면 아담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그의 속죄가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었다면 다시는 죄와 죽음이 세상을 주관하지 못하여야 하고 새아담을 통한 새로운 언약관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새아담은 반드시 부활해야 한다.
넷째, 이러한 대속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여자의 후손은 이 세상의 아담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피조물 중에는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다 아담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들어 있고 모두가 다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죄인을 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은 새 아담을 창조하시거나 하나님 자신이 새아담이 되는 수 밖에 없다.
다섯째, 이러한 구원의 원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없고, 또한 죄인들이 당장 이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 구속의 원리를 가르치고, 또한 제사제도를 주셔서 대속적 죽음과 죄로부터의 해방을 실감하고, 소망하도록 하셨다. 제사에는 성전, 제사장, 제물이 잇어야 했다. 제사제도, 즉 성전과 제사장과 제물은 다같이 새아담에 대한 모형이다. 따라서 제사장인 새아담은 여자의 후손으로 신적 존재여야 한다. 새 아담은 바로 멜기세덱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 멜기세덱은 옛 아담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들어 있는 자가 아니다. 따라서 그의 정체는 보통 생육법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과 같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어야 한다. 그는 우리 인간 역사를 초월한 존재, 바로 예수님의 모형으로서 오신 제사장인 것이다. 그에게는 족보나 반열이나 계열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는 아브라함의 경배와 십일조를 받으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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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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