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불타는 단풍
                                  
  김 소 엽
당신이 원하시면
여름날 자랑스러웠던 오만의
푸르른 색깔과
무성했던 허욕의 이파리들도
이제는 버리게 하소서

혈육의 가지를 떠나
빈 몸으로
당신 발 아래 엎드려
허망의 추억까지도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피로 물들여 주소서

바람이 건듯 불면
당신의 음향으로
내 젖은 영혼이 떨리게 하시고
노을이 찾아들면
육신은 더욱 고운 당신 빛으로
황홀한 색채를 띠우게 하소서

푸르른 나는 가버리고
당신이 내 안에 뜨겁게 살아서
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게 하시고

머언 훗날
어느 순결한 신부의
일기장 속의 연서로 남아
당신의 사랑으로 물드는
한 장 불타는
단풍이게 하소서

시인의 시는 기도이기를 원한다, 오로지 모든 자랑과 오만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위(無爲)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열정과 허욕과 자아가 살아서 꿈틀대던 모든 나날도 그 분 앞에 내려놓고 생애를 돌아본다. 붉은 단풍잎은 제단(祭壇)아래서 고백성사를 한다. 무성한 인간의 죄성이 불 태워지기를 염원 한다. 한 분 만이 알파와 오매가인줄 안다. 불 타는 단풍은 하나님게 드리는 아름다운 소제(Grain offering)가 되고 있다
고운 밀가루와 한줌 기름과 유향을 섞어 단 위에 불사르는 산 제사가 되기를 간구한다. 나는 없고 그 분만이 육신과 영혼을 붉게 물들이고 점유하고 계시는 절정의 시간, 그 황홀함을 交感하면서 낮게, 더 낮게 무성했던 푸른 잎들은 시들고 단풍잎이 타고 있다. 나는 없고 그 분 만 계시는 곳, 나의 모든 불타는 사랑으로 소제 드려서 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게 하시는 오직 한 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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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불타는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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