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개조 반박문’에 녹아있는 루터의 분노
2017/09/21 15:5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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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로 인한 민중의 죽음 “루터는 민중을 택했다”

1500년 넘게 유럽 전역을 지배했던 가톨릭의 심장에 개혁의 깃발이 꽂은 마르틴 루터. 그가 일으킨 종교개혁은 단순히 종교를 넘어 사회, 경제, 문화, 인권, 교육 전반에 걸쳐 이 세상을 뒤집었다.

종교가 곧 법이자, 삶의 전부였던 시대. 그런 종교를 무기로 삼아 자신의 탐욕을 채우던 이들에게 던져진 루터의 반박문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종교의 중심에 들어 온 평범한 민중이었다. 사제들만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류 전체로 퍼져나갔으며, 무엇보다 누구나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교회 역시 학술행사와 기념식, 기념메달 발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종교개혁을 기념하고 있다.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중세 가톨릭의 타락과 루터의 신학을 재조명하며, 한국교회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마르틴 루터의 신학과 종교개혁을 접하며, 한 가지 사실을 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로 민중을 사랑하고 아꼈던, 그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인간 루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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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의 분노

15171031,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한 장의 대자보가 붙는다. 바로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발해 쓴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자, 우리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해서는 이미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건으로 로마에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해 사람들에게 영혼 구원을 미끼로 돈을 받고 판매한 문서다. 세상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심지어 죽은 자신의 조상들마저도 돈을 내고 면죄부만 산다면, 그 모든 죄는 사해지며,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완전한 방어권이다.

그리고 이 면죄부는 발매와 동시에 유럽 전역을 휩쓸 듯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다. 면죄부에 따른 구원의 진위에 대한 의심은 결코 있을 수 없었다. 신의 사제들이 행하는 일을 의심한다는 것은 신을 의심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청으로 판권을 얻은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독일 전역에 면죄부 판매인을 보내, 돈을 거둬들이는데 열을 올린다. 그 판매인은 바로 도미니크 수도회 수사인 요한 테첼, 그는 가는 곳마다 민중들을 향해 성모 마리아를 강간해도 면죄부만 있으면 깨끗이 용서받을 수 있다” “헌금함에 넣은 동전이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조상들이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말하는 등 엄청난 상술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하지만 단 한 곳, 마르틴 루터가 신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던 비텐베르크만은 들어오지 못했다. 엘베 강이 가로지르는 비텐베르크는 당시 면죄부 판매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탓이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 날 요한 테첼은 비텐베르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근 마을에 자리를 펴고 면죄부를 판매하고 이 소식은 삽시간에 비텐베르크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 날 밤 비텐베르크 민중들은 면죄부를 사고자 감시를 피해 몰래 얼어붙은 엘베 강을 건넌다. 하지만 제대로 얼지 않았던 얼음판은 곳곳이 깨져 나갔고, 수백명의 민중들이 얼어붙은 강에 갇혀 죽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루터는 엄청난 슬픔과 함께 극한 분노를 토해낸다. 시민들을 지켜내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하며, 그 길로 성 교회로 가 면죄부 판매를 맹비난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붙인다. 라틴어로 쓰여진 이 ‘95개조 반박문은 단 2주만에 각종 언어로 번역되어 독일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루터, 만인을 말하다

오늘날 종교개혁을 있게 한 ‘95개조 반박문의 실제적 발단은 면죄부에 눈 먼 민중의 떼죽음을 목도한 루터의 분노였다. 수많은 신학적 이유와 중세 가톨릭의 타락이 있었지만, 루터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 결정적 매개는 바로 민중들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당시 종교는 삶의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 사제들은 이를 민중들에게 직접 허락하지 않았다. 신의 대리를 맡은 자신들을 거쳐야만 가능했다. 이들이 이러한 종교 관습을 일반화 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한정된 교육이었다. 당시 최고의 교육이었던 신학은 위에서 언급했듯 오직 사제들에게만 허락됐으며, 일반인은 결코 접할 수가 없었다. 성경은 감히 읽는 것조차 허락되지도 않았지만, 배우기 어려운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는 자연스레 민중의 우민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우매한 민중들은 다루기 상당히 편했다. 신의 이름만 앞세운다면, 그 어떤 일도 용납 됐으며, 심지어 죽음조차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

면죄부 판매는 바로 민중의 우민화를 이용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구원을 빌미로 한 저급한 협박이었지만, 우매한 민중들이 이를 의심할 리 만무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성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순수한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탐욕에 대한 분노 가득한 일갈이었다. 그 후 루터는 성직과 세속직에 차이를 두지 않고, 모든 기독교인들은 영적 직분을 갖고 있다는 만인제사장설을 외친다. 그리고 이는 모두를 위한, 만인을 위한 교육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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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제2의 종교개혁 핵심은 이웃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루터를 포함해 얀 후스, 존 위클리프 등 종교개혁의 선진들이 목숨까지 내걸고 성경을 번역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교회가 위기에 빠진 바탕에는 스스로의 권위를 너무도 높여버린 까닭이 크다. 모두에 평등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겸손히 사회와 국민을 섬겨야 할 교회가 그들과 맞서려고 하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각 직분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이 되어, 교회 조직을 철저히 상하 관계로 계급화 하고 있다.

교회는 국민들과 맞서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제2의 종교개혁을 말하며, 교회 회복을 부르짖지만, 무엇보다 국민을 위한, 소외된 이웃을 위한 교회로 먼저 거듭남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의 수많은 주제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교회는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500년 전 루터가 민중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듯 오늘날 한국교회의 종교개혁은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또한 교회 내 계급을 타파하고, 성도들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통해 성도들 개개인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더 이상 목회자 말에 무조건 아멘만을 외치는 성도가 좋은 성도라고 가르칠 게 아니라, 지식과 경험에 바탕한 현명한 판단으로 교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있는 성도를 길러내야 한다.

‘95개조 반박문을 있게 한 루터의 분노는 그 내용만큼이나 오늘날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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