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제72회 총회장 김길현(金吉鉉) 목사
2017/09/29 10:32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갈라진 교단을 하나로 모으는데 리더십 발휘
1.jpg
 전남 무안 출신
김길현(金吉鉉 1926.1.19~2008.2.6) 목사는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1920년대는 조선이 일제 식민지였다.
무안은 동으로 영산강이 접해 나주와 영광으로 통하고, 서쪽으로는 신안군의 여러 섬과 접해 있으며, 남으로는 목포시, 북쪽으로는 함평에 접해있다.
무안군은 높이 400m 이상의 산지는 없고 야트막한 산과 낮은 구릉지와 평지로 형성된 전형적인 농지로 이루어져 있고 한반도 남서쪽 해안을 끼고 있어서인지 온화한 해양성 기후여서인지 농사짓기에 아주 적합한 지역이다. 김길현 소년 역시 이와같은 자연환경에서 성장해서인지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따뜻한 심성이다.
그가 태어난 조선의 정치와 경제적인 현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불안이 가득한 시기였다. 이러한 와중에도 인근 나주와 함평 목포와 군산에 미국남장로교 선교부가 설치되었고, 이들 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무안에도 이르러 기독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다. 소년 길현도 비록 시골 벽지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선교사들로부터 전해받은 복음진리를 깨닫게 되자 좀더 배워야겠다는 자의식이 싹트게 되었고 교회에서나마 사경회 등을 통하여 기독교의 진수를 깨닫게 되자 주저하지 않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는 일찌기 서당에 다니는 친구들 어깨너머로 듣고 배운 한학의 초보적인 실력은 갖추고 있었고 이를 옆에서 지켜본 교회 지도자들이 길현 소년에게 성경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유하게 된다. 그는 전남노회에서 직영하고 있는 성경학교에 입학해 신·구약 성경공부에 전념하게 되었고 성경학교에서 성경을 배우며 전도자의 사명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총회가 운영하고 있는 장로회신학교(현 총신대신대원 전신)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 사이 조국은 8.15 광복을 거치고 1950년 6.26 전란을 겪기도 했지만, 김길현은 용케도 살아 남았고 신학교를 마치고 강도사를 거쳐 전남노회에서 목사장립을 받게되었다. 그때가 6.25전쟁의 포성이 멈춘 이듬해 1954년 5월 8일이었다.

성경학교 졸업 후 장로회신학교 입학
광주 백운동에 ‘대성교회’ 설립
광주 숭일학교 이사장·총회신학교 이사 역임
지도자의 언행일치 강조
겉모습은 시골 노인 같았으나 말씀엔 위엄 있어

그 사이 몇 교회에서 전도사를 거쳐 강도사 인허를 받았으며 1965년 6월 31일 고향이나 다를바 없는 광주시 서구 백운동 380-1번지(이성섭 장로 자택)에서 교우 30여명과 함께 첫 개척예배를 드림으로 오늘의 광주 대성교회가 출발하였다.  개척 멤버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물질적인 헌신과 협력으로 드디어 1967년 5월 13일 50평의 신축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고, 1968년 4월 15일 전남노회로부터 교회이름을 ‘대성교회’로 허락받기에 이른다.
교회는 김목사와 온 성도들의 열심있는 충성으로 1978년 1월 17일 광주시 서구 백운1동 380-1번지 현 위치에 연건평 350평의 아담한 새 건물을 마련해 1,600여 교인들이 회집하는 중형교회로 성장하였다.
아울러 해외선교에도 눈을 돌려 1969년부터 구 소련방이었던 러시아에 메시야신학교(Messiah Seminary)를 설립하였으며(이사장 김길현 목사), 중국에도 선교사를 파송 선교에 주력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도 미자립교회 및 개척교회 17처를 지원하고 있다.
김길현 목사는 대외적인 활동과 봉사에도 소흘히 하지 않았다. 그가 속해있는 전남노회 노회장을 비롯 지역에 있는 광주 숭일학교 이사장으로, 총신대학교 이사를 역임하기도 하고, 총회인준신학교인 광주신학교 교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부총회장(1986년 9월)을 역임하였으며, 드디어 1987년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신림동교회에서 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72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의 자리인 총회장에 선출됨으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목회경력과 원만한 성품으로 교단을 이끌어 갈 지도자로 인정받아 총회뿐만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훌륭한 리더쉽을 발휘, 교단의 위상을 높였다.
그가 재임했던 제72회 총회 중요 결의안을 요약하면, ① 총회인준 지방신학교 신학부 3년제를 1988학년도부터 4년제로 학제를 개편하기로 하다. ② 경기도 과천지역은 중·경기노회로 편입하기로 하다. ③ 노회 분립(중부산, 남부산, 동부산)을 허락하다. ④ 전도목사도 임시목사에 준하여 노회임원이 될 수 있다. ⑤ 라틴 아메리카 장로교신학대학과 브라질선교회 설립건은 인준하기로 하다.(제100회총회 회의결의 및 이승희 김창수 편, 예장총회 2016 p.29 참조).
광주 대성교회의 1995년말 현재의 교세는 교인 총수 3,200명(학생 670명, 장년 1,530)으로 성장하고 있다. 대성교회는 광주지역 복음화를 뛰어넘어 세계를 품고 선교에 매진하고 있는 교단의 자랑스러운 교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생애 말기에 이르러 교회분쟁에 휘말려 그는 새로 갈라나간 광주하영교회에서 목회를 마감하였다.
그가 재임했던 72회기였던 교단 기관지인 기독신보(1987. 10. 3 토 p.1)에 실린 총회장 취임사를 보면 교단장으로서 총회와 산하교회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때로는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신신학 문제로 신앙적인 아품이 컸고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W.C.C 여파로 말미암아 분열의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신앙과 신학이 같은 우리끼리도 인맥과 지방색으로 인한 반목때문에 사분오열의 쓰라림을 맛 보았습니다. 이때마다 건전한 신학과 훌륭한 신앙을 지닌 선배님들의 투쟁의 공로는 오늘까지 총회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음을 퍽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도 선배들이 지키고 쌓아온 신앙과 신학과 전통에 추호의 흐트림이 없이 일사각오로 전진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임기중에 행정의 지표로 삼을 3가지는 국내외의 선교사업이 박차를 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총회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지상명령인 전도가 중심이 되어져야 합니다. 둘째는 총회산하 전교회와 주의 종들이 하나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도록 할 것입니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총회의 재정, 사업 현황을 기독신보에 조금도 의문이 없게 하겠습니다. 셋째로 헤어진 형제들을 영입하여 하나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믿고 참여하여 돕는 풍토를 조성함으로써 우리가 주 안에서 하나라는 의식을 새롭게 하겠습니다.”
뿐만아니라 그의 목회철학과 교단 운영의 원리 원칙을 피력한 설교 한편이 있는데 그 설교는 성경본문을 마 9:35~38절을 가지고 본교단 지도자 양성기관인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식에서 미래의 일꾼들을 향한 메세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서론에서 어떤이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보화가 아니라 인물이라고 전제하고서 신학을 마치고 주님의 명에 따라 목회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미래의 지도자들을 향해 다섯 가지의 명제를 제시하며 설교로 천명하였다. 어떤 지도자가 되기 전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갈파하였다.
여기에 그의 메세지를 요약하면, 첫째 언행일치의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의지가 굳어야 합니다. 셋째, 실패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한 가지 이념에 전념할 것입니다. 다섯째, 작은 일에 충성할 것입니다. 작은 일에 성공하는 자라야 큰 일에도 충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됩니다.
마태 25장을 보면 주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 보여주는 광경이 나옵니다. 우편에 있는 저들에게 내가 주릴때 먹여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 입혀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며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작은 일에 관심가지고 충성하며 섬기는 인물이 좋은 인물이요 주님께서 바라시는 바임을 깨닫을 것을 호소하였다(기독신보 1988년 2월 20일 토 p.4참조).
김길현 목사가 총회장으로서 후배들에게 설교한 것이지만 그의 목회철학과 섬김의 도를 피력한 메시지라 생각된다. 그의 겉모습은 시골 노인같았지만 그가 말씀을 증거할 때는 위엄과 사랑이 깃들어온 교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 병석에서 가족들과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로운 모습으로 2008년 2월 6일 82세를 누리고 주님의 품에 안기었다. 예장총회는 그의 장례식을 총회의 예를 다해 총회장(葬)으로 모셨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