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제99회 총회장 백남선(白南善) 목사
2017/10/13 14:19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기초 위에 선교와 교육지향
1.jpg
 전남 고흥 출신
백남선(白南善 1947. 2. 5-) 목사는 전남 고흥군 과역면 효덕리에서 선친 백형만과 정선례 사이에 3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고흥은 서해안에 접한 섬 지방이어서 당시 8.15광복이 된지 오래지 않아 시국은 어수선했으나 북쪽을 제외한 동남서쪽은 바다에 접해 있어 여러 종류의 해산물이 풍부하여 부모 슬하에서 여러 형제들과 함께 먹거리 걱정은 비교적 타지역보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 순탄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그가 태어난 효덕리는 바다와 가까워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언제 평화로운 세상이 돌아 올지 몰랐지만 그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호남지방은 선교사 공의회 시절(1893-1900)에 선교담당 구역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맡았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도서(섬) 지역이 많아 선교사들의 활동이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난관을 무릎쓰고 육지에서는 말을 타고 섬 지방에는 배를 타고 수로(水路)를 개척해 들어가 열심으로 선교에 임하였다.
군산과 남원 김제에 이어 고흥 땅에도 선교사들에 의해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기록상으로 고흥땅에 제일 먼저 설립된 교회는 1907년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에 세워진 신흥리교회, 1908년에 같은면 신평리에 세워진 명천교회(오석주), 1915년 고흥군 포두면 진두리에 세워진  길두교회(유천석), 1917년 도양면 관리의 도양중앙교회(이형술), 1921년 같은면 당선리의 도화교회(지익풍), 이듬해(1922) 영암면 남열리 남열교회(보이열 선교사), 1924년 오양읍 봉암리 대봉교회(임찬호), 1925년 도덕면 가야리 가야교회(박병학), 1927년 포두면 송산리 송산교회(황하윤), 1930년 과역면 과역리 과열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남선 소년은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면소재지에 있는 과덕교회에서 성경을 배우며 지도자들을 통해 동화 이야기도 들으며 교역자들의 설교를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재미있게 들으며 신앙을 키워 나갔다.
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이르자 효덕국민학교와 여항중학교, 순성고등학교로 진학 중등교육을 탈없이 이수할 수 있어 해방 후 혼란한 틈바구니 속에서도 이렇게 무난하게 마음놓고 기초실력을 다질 수 있었으니,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였고 다음으론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부모들을 도와 생업의 전선으로 몰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는 대학을 마치자 바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진학, 3년의 신학교육을 이수하고 1979년 2월 졸업하였다.
졸업 후 광주노회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고 이듬해에 목사장립을 받았다. 1984년 지역사회 복음화란 큰 뜻을 품고 광주 화정3동 159번지에서 미문교회를 개척 오늘의 대교회로 성장시키는데 주역을 감당하고 있고, 그의 목회철학은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칼빈주의의 5대 교리의 기초 위에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을 강조하며 실천강령으로 선교와 교육을 지향하며 교인들을 제자화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광주 화정동에 미문교회 개척
총회 규칙부장과 교육부장 등 두루 거쳐
광주경찰청 발전위원 등 경찰선교에 정성 쏟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탈퇴” 결의

그는 교회를 섬기면서 노회와 총회, 나아가서는 대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임무도 마다하지 않고 힘 닿는대로 적극 참여 봉사하였다. 과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지나친 욕심을 억제하며 주어지고 맡겨지는 일에 대하여서는 노회 일이나 총회적인 봉사와 대사회적인 이웃 봉사에도 최선을 다 할려고 노력한다.
그는 자신의 자질을 스스로 갈고 닦고자 1995년 5월엔 미국에 있는 휴스턴(Huston) 신학대학원 M.Div 과정을 마쳤고, 2011년 6월 뉴욕에 있는 비브리칼(Biblical)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과정(D.Min)을 이수하였다. 그리고 2014년에 목회와 교정(敎政)에 이받이했다고 미국 개혁신학원으로부터 명예신학박사(D.D) 학위를 받기도 했다.
총회적으로는 1992년에 총회 규칙부장으로, 2004년에 총회교육부장, 2012년엔 총회 서기로 선출되어 봉사했고, 2012년엔 총신대학교 재단이사로 봉사했고, 2014년 9월 22일부터 26일까지 광주게자씨교회에서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제99회 총회장으로 피선되었다.
대외적 봉사로는 총회장을 역임한 이듬해 2015년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회장, 2001년엔 호남협의회 회장과 2004년엔 광주서부경찰서 경목부장, 2010년엔 광주시 초교파 교단협의회 회장, 2010년 이후 현재까지 광주광역시 경찰청 발전위원으로 경찰선교에 힘을 쏟고 있다.
2017년 9월 현재 본교단 산하에 있는 <예장출판사> 대표이사로 문화사역에도 봉사하며 미문교회 성장과 부흥에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 있다(백남선 목사 이력서 2017, 8. 30.  p.1 참조).
그가 재임했던 예장 제99회 총회의 중요 결의안을 살펴보면, ① 총회 기구개혁 혁신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하다. ② 신앙과 직제일치협의회 운동에 대하여는 본교단의 신학사상과 맞지 않음으로 반대입장을 발표하다. ③ 각종 목적 주일을 <…날로 변경하여 사용하기로 하다. ④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탈퇴하기로 가결하다. ⑤ 가톨릭교회에서 받은 영세(領洗)를 인정하지 않기로 가결하다(제101회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 서현수 김창수 편, 예장총회 2017. p.42).
끝으로 백남선 목사의 신앙과 신학 그의 목회관을 엿볼 수 있는 설교 한 편을 살펴보므로 백남선 목사의 속마음을 헤아려 보고자 한다.
성경본문 구약성경 사무엘상 26장 1절부터 12절, 설교제목 ‘도우시는 하나님’이란 제하에 1.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도우시는가. 1) 주님과 함께 하는 자를 도우십니다. 6절에 다윗이 아히멜렉과 아비새에게 말합니다. 내가 사울의 진지로 가는데 누가 나와 함께 가겠느냐?
큰 일 날 소리입니다. 삼천명 특공대를 데리고 다윗을 잡겠다고 하는데 그 소굴로 다윗이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함께 가서 죽으면 죽으리라 그런 각오 없었으면 다윗 따라 나서지 못합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다윗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래서 그 일로 아히멜렉은 영원히 성경에서 없어져 버렸지만 아비새는 계속 성경에 나옵니다. 다윗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이 아비새는 장군이 되고, 다윗의 군대 장관이 되어 복되게 살았습니다.
2) 영적인 줄에 선 자를 도우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십 사람들은 줄을 잘못 섰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려 떠나셨는데 십 사람들은 사울한테 붙어가지고 또 다윗을 고발합니다. 훗날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십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성도도 영적으로 줄을 잘서야 합니다. 망하는 사울 왕에게 십 사람들이 붙듯시, 망하는 고라에게 유명한 250명이 붙듯이, 오늘 교회 안에도 마귀 짓 하는 데도 거기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 어떻게 도우시는가. 3절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보고 들어옴을 알고 사울이 뒤따라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깨달음입니다. 만약에 다윗이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뒤따라 오는 것을 몰랐다면 다윗은 죽습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으로 사는 자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9장 39절에 보면 노아 때 홍수가 나서 다 멸망하였는데 그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다가 다 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오실 때도 바로 그런다 하였습니다. 말세가 되면 깨닫지를 못하는 겁니다. 시 편 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깨닫는 게 참 중요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깨닫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요 복입니다. 설교를 듣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의 자세가 중요하듯이 설교 듣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시편 42:1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그래 세우신 목사님을 통해서 나에게 내 가정에 주신 말씀 한 말씀도 놓지지 않고 들어야 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배생활, 기도생활, 헌신생활, 봉사생활 더 잘해야지 하는 깨닫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설교는 장로교 후예들의 공동적인 신앙관을 엿볼 수 있는 모점적인 메세지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의 슬하엔 2남1녀를 두었는데, 장남 백성철은 ㅁ고사가 되어 목포 사랑의교회에서, 둘째는 선교사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