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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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이번 학기에 한세대 대학원의 박사과정 강의에 “한국종교와 기독교 선교 세미나”라는 과목을 개설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그동안 모든 강의들이 외국의 것들로 채워져서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을 뿐만이 아니라 선교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종교를 비판적 관점에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글의 많은 부분을 박사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 발표된 부분을 발췌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먼저는 샤머니즘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샤먼”이니 “샤머니즘”이니 하는 용어는 원래 한국어와 동일한 언어계통인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퉁구스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샤먼은 신령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들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그러므로 신령들을 불러 제 몸에 모시고 그 신령들이 자기 몸을 통해 인간들에게 말을 하도록 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샤먼은 몰아경 내지는 탈아경에 돌입한다.
최근 들어 샤머니즘이라는 용어는 세계 여러 문화권 안에서 다양한 종교적 과제들을 취급하는 사람들과 그 제도에 구별 없이 마구 사용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즉 신비가·주술사·주술의 등에게도 “샤먼”이라는 호칭을 남용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하간에 순수한 샤먼은 신령에 대한 종교적 체험을 한 사람들만을 일컫는다. 샤먼의 신령체험 내지 소명체험의 첫 증상은 샤먼 후보자의 지속적인 정신장애와 육체적 고통이다. 한국 무교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신병 혹은 무병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무당이 되는 증후군은 샤먼의 직능을 수행함으로써 차차 극복된다.
엘리아데 같은 종교학자들에 의하면 한국을 위시하여 중국, 일본, 몽골 등 동북아시아의 이러한 신앙체계는 북만주 지역에 분포하는 퉁구스족의 종교를 대표로 하는 시베리아 형의 샤머니즘에 속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샤머니즘이라고 알려진 시베리아의 샤머니즘과 비교해서 한국의 무교는 그 틀이 상당히 고정되어 있다. 특히 남부 지방의 무교는 강하게 의례화한 모습을 보인다. 시베리아의 샤머니즘과 다른 한국 무교의 변형은 지리, 기후적인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현상은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 사양길을 걷는 반면, 한국의 무교는 여전히 활발하게 살아 있는 종교현상이라는 점이다. 가톨릭 대학의 종교학 교수인 박영일 교수는 2015년 강의에서 무속인이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말하였다. 대한승공경신연합회는 그 이름을 대한경신연합회로 바꿨고 협회 홈페이지의 로고에는 30만 무속인의 단결과 화합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2017년 9월 14일의 시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에 최소한 10만 명에서 많게는 30만 명 안팎의 무속인들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종교의 삼대 요소를 흔히 경전과 의례와 조직이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한 종교로서 온전한 꼴을 구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무교에는 경전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조직도 정비되어 있지 않다. 소위 『무경』巫經이라는 것이 있으나 그것은 구비전승된 내용을 단순히 받아쓴 형태이지 공인된 종교 경전은 아니다. 그리고 무당들의 조직은 친선단체나 이익단체이지 종교적 기능을 하는 종교 교단조직은 아니다.  최근에 각 지역 무당 대표자들이 1988년 5월 경기도 남이섬에 모여 “천우교”의 창교를 선포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소략한 형태이긴 하나 『천우교 교리서』까지 발간하였다. 서울 인근의 경우, 굿당의 수효가 다시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인왕산 국사당 등 서너 개로 명맥을 유지하던 굿당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십 여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심지어는 대단위 아프트 단지 부근에도 굿당이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무교를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현대사회 속의 ‘원시’종교”라고 부를 수 있겠다. 즉, 심각하고도 신혹하게 변화하는 사회 가운데 엄존하는, 오래된 그러나 생동하는 종교라고 말이다.
샤머니즘은 우리의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샤머니즘이 여과 없이 기독교에 혼합됨으로서 문제를 야기 시킨다. 특히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기독교가 지닌 진리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함으로 혼합된 신앙 속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성도들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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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적 신앙을 배격해야 할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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