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제66회 총회장 최성원(崔聖園) 목사
2017/10/26 14:5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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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회의 동시 성장 추구한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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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김제 출신
최성원(崔聖園 1926.7.21~1985.8.10) 목사는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서 최기남 장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모들이 일찍 예수교를 믿었기에 기독교 신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1927년 10월 유아세례를 받았다. 고사리란 곳은 바닷가에 인접한 자그만한 어촌이라 생활이 어려웠다. 제대로 정규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되었다.
그는 부모가 신앙인이라 개명된 문명을 일찌기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행운이었다. 집에서 부모들을 도우며 살던 성원 소년은 고향에서 꽤나 먼 전주에 있는 선교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전주고등성경학교에 입학, 새로운 영적 세계와 새로운 세계에 눈이 띄기 시작하였고, 성경을 배우며 미래를 꿈꾸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한적한 어촌 집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성장해서인지 마음과 생각은 넓었다. 1945년 8월 15일 갑자기 닥친 광복을 맞이해 혼란한 사회상을 목격하며 한때는 낙심한 때도 있었으나 해방과 더불어 서울에서 개교된 박형룡 박사가 교장으로 있는 장로회신학교(현, 총신대학교 전신)에 들어가 한국교회와 조국의 미래를 가슴에 품고 열심히 공부하고 1949년 장로회신학교 제2회 졸업생이 되었다.
함께 졸업한 동기들 중에는 눈에 띄는 한국교회 기라성같은 지도자들이 보인다. 김삼대 배수환 원승록 이성헌 조동진 한승직 한완석 김복출 김인실 박병덕 등이다(김제노회 반세기, 김요나 저, 김제노회 역사편찬위원회 2002 p.738~739, 한국기독교사 총람 이찬영 편, 소망사 1994 p.951~952 참조).
 최성원은 신학교를 마치고 1953년 9월 17일 휴전 직후 김제노회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은 후 1년만에 목사안수를 받고 본격적인 목회사역에 진출하게 된다.
그는 목회를 하면서 미래의 한국교회 발전을 위해 자신의 부족을 느끼고 자기 계발에 눈을 떴다. 그 일환으로 같은 지방에 있는 국립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진학 이수하였고, 다시 총신대학교 병설 하기대학과 동기대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의 시무교회로는 봉동 서두교회를 비롯, 군산구삼교회와 여수제일교회, 후에 전주서문교회에 부임했다.
최성원 목사가 서문교회에 부임해 목회하던 중 예기치 못한 교회 분규가 생겨 자기를 지지하던 교인들과 함께 서문교회에서 나와 오늘의 전주제일교회를 설립하여 1985년 그가 주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봉직하였다.
이와함께 그의 교단 내의 봉사한 이력을 살펴보면 순천노회 노회장을 역임했고, 군산에 있는 영명중·고등학교 이사장과 교장을 역임하였다.
1972년 9월 예장총회 회록서기에, 1975년 8월엔 총회서기에 당선되어 봉사하였고, 전주노회장 및 동전주노회장과 전주에 있는 총회 인준신학교인 바울신학교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봉사를 하던 중, 1981년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대전중앙교회(이영수 목사 시무)에서 개최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66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首長)자리인 총회장에 당선되었다(한국기독교대사전, 박용규 편, 성은출판사 1978 p.831참조).

전주고등성경학교와 장로회신학교 졸업
김제노회서 강도사 인허와 목사 안수
전주서문교회 시무 중 전주제일교회 개척
총회 회록서기 및 총회 서기 봉사
교단 1만 교회운동 적극 추진

그가 총회장이 되던 해 11월 추수감사절 메세지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일별해 보면, 날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여건에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막중한 의무와 축복이 있다고 전제하고서, “지난 한 해동안 이 나라를 축복하시고 사회적 안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특히 총회에 내려주신 은혜를 감사했고, 총회회관 건립에 전심전력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또 전국교회는 이 일에 힘써 줄것을 당부했다.
다음으로는 민족복음화를 위한 일과 1만교회 운동에 전국교회가 협력할 것과 이 일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추수감사절이 선교의 절기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며 해외에 나가있는 30명이 넘는 선교사들을 적극 기도와 물질로 지원해 줄 것을 강조했다(기독신문 1981년 11월 14일 p.1 감사절 메세지 참조).
최성원 총회장은 그 해 12월 성탄절 메세지에서는 우리는 성탄절을 맞아 자신을 조용히 반성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 보아야겠다고 했으며,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살지 않았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첫째,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있어야겠고, 우리는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형제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고, 서로가 어떤 영문이었던지 비방하고 규탄해 온 것을 회개하고 서로 용서해야겠다.
둘째, 이웃의 형제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는 일들이 있어야겠다. 사랑의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도 사랑을 실천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야 하겠다.
셋째, 이러한 신앙의 기초 위에 교회의 성장발판을 놓아야 하겠다. 교회가 성장해야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교회와 함께 성장해 가야 한다.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성장해 가야 한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뜻깊은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교회와 가정 그리고 사회도 그의 뜻에 따라 성장하게 해야 하겠다고 하였다.
이 성탄절 메세지 속에 최성원 목사의 신앙관과 목회철학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기독신문 1981년 12월 19일 p.1 참조).
그가 총회장에 당선돼 취임사를 발표한 것을 보면 더욱 그의 목회관과 총회방향에 대해 엿볼 수 있다. 그는 먼저 일하는 총회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전제한 후, 12가지의 총회 지향점을 발표했다. 총회가 6년 전부터 실시해 오고 있는 1만교회운동 지속과 외지선교사업, 총회센터(회관) 완공, 개혁신학의 재확인, 교역자 은급제도 실시 등에 전력을 다할 것을 다짐했으며, 전국교회의 협력을 당부하였다(기독신보 1981년 10월 3일 p.1. 취임사 참조).
그가 재임했던 제66회 총회의 중요 결의안을 요약하면, ① 신조 2항 중 ‘자연히’를  ‘스스로’로 수정하기로 하고 각 노회에 수의하기로 하다. ② 총회 서부노회와 미주 서부노회가 경영하는 두 신학교를 통합하여 미주대회(美州大會) 직영 신학교로 운영하기로 하다. ③ 박성만 목사(김천제일교회)를 총회 제5대 총무로 선임하기로 가결하다. ④ 총회산하 전국남전도회 규칙을 인준하다.
최성원 목사는 1985년 8월 10일 자택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굴곡 많았던 한국근세사를 살면서도 신앙의 지조를 저버리지 않고 올곧은 삶을 승리롭게 마감하고 주님의 품에 안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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