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금으로서의 기독언론-임 영 천 목사
2017/11/17 16:3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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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만 일년 전인, 2016년 10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일단의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는 이른바 촛불집회의 시발이었다. 시민들의 이 자발적인 모임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거의 매주 토요일에 어김없이 모이되, 그 숫자도 점차로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거대한 집단의 위력은 대단하여 끝내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루어내더니, 다음 단계로는 헌재(憲裁)에서의 파면마저 끌어내어 그의 독재권좌로부터의 완전 실각을 성사시켰다.
그리고는 금년 5월 10일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 정치적 혁신을 이루겠다고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개혁정책을 국민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봐주고 있음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끊임없는 인사정책의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음은 국민들을 매우 실망스럽게 하고 있다. 어느 후보자가 실정법적으로 문제가 없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관습법이나 도덕법에서도 별 하자가 없는 후보자가 내세워질 때 국민들은 소위 ‘개혁’지향적이라는 새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핵 위기 조성 국면을 빌미 삼아 심화되고 있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군사 외교 면에서의 남한 정치에의 과도한 개입이 국내의 뜻있는 인사들에게 상당한 위구(危懼)의 감(感)을 자아내게 하고 있음도 사실이어서, 이 혼란한 정국을 문재인 새 정부가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지 우려되는 바 없지 않다. 트럼프가 남북 상호간의 군사적 대결을 부추김으로써 미국의 대량 무기판매를 기도(企圖)하는 것까지야 지나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 예기치 않게 남북 간에 실제로 전쟁이 발발한다거나 나아가 세계대전으로 확전(擴戰)되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볼 때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역할(대처능력)이 매우 중차대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빈부 간의 격차가 심하고, 보혁(保革) 간의 대립이 심하며, 거기에다 동서의 지역 간 골도 깊어서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의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게 아니라 근래, 또는 현재 터지고 있다고 보아서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라는 형식을 통해서 금년 내내 터지고 있어 왔다고 하겠다. 실은 이 두 가지의 대립적인 집회가 빈부의 격차와 보혁의 대립, 그리고 지역 간의 골 문제 등을 모두 다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틀림이 없다 할 것이다. 정치인들도 이들 어느 한쪽 집회의 암시성에 잘못 이끌리면 자기처신의 불투명성까지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전에 거대 야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른정당이란 신당을 만들었던 의원들이 최근 자기들이 만든 그 정당이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지 옛 정당으로 다시 복귀하고 만 사건도 알고 보면 그 어느 한 집회의 잘못된 암시성에 스스로가 최면당해 일어난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로 인해 다른 정당들 상호간의 지각변동과 한국정계의 혼란상마저 부추기고 있음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세속사회의 실상이 이렇다면 그럼 기독교계는 어떤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혹 세속사회가 저러한데 기독교계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라고 자위하려는 사람들이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 문제를 그렇게 보아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왜냐면 예수께서 우리를 가리켜 “세상의 소금”(마 5:13)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세속사회가 혼탁하니 우리 기독교계도 별 수 없이 부패해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그 부패해지려는 세상을 ‘소금’으로 바로잡아 부패하지 않게 하는 게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기독교회(곧 예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기독교계가 어떤가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한마디로 말해 한숨부터 나온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특별히 올해가 종교개혁 5백주년의 해여서 이런 심정은 더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종교개혁가들이 도전했던 대상은 바로 로마교회의 왕권의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교회의 잘못된 제왕의식으로부터 모든 교계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흘러나왔었기 때문이다. 이 잘못된 것들을 우상파괴정신으로 분쇄하려고 했던 게 바로 종교개혁가들의 위업(偉業)이었다고 보겠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오늘의 교회의 지도자들이 스스로 자기정화를 하기는 어렵다는 게 교회세습과도 같은, 기독교계의 악습(제왕의식의 분출)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었다고 한다면,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교정하도록 끊임없이 지도 편달하는 소금의 역할은 기독언론밖에 없다고 볼 때, 창립27주년을 맞은 <교회연합신문>의 사명이 그만큼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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