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朴武用) 목사
2017/12/07 14:5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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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황금교회’세워 비전목회 성공한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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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산  출신
박무용(朴武用, 1949. 8. 15~) 목사는 경북 경산시 평산동 437번지에서 박태규 장로와 김정자 권사 사이에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평산동은 대구 도심에서 그리 멀지않은 전형적인 농촌으로서 하늘 높고 물 맑은 개천이 흐르는 산촌이었다.
인근에 있는 대구에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 배위량(Rev. Wn. M. Baird 1862~1931) 목사에 의해 대구선교지부가 설치되어 있었고, 오늘의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교회가 된 대구제일교회를 비롯, 일제 당시에만 해도 대구읍내에는 서문교회, 산격교회, 범어교회, 남산교회에 이어 경산지역에도 사월교회, 경산읍교회, 자인읍교회, 봉화교회 등이 설립되어 있었다.
박무용 소년이 태어난 당시에도 이미 여러 교회들이 설립되었고, 드디어 무용 소년이 살고 있는 평산에도 장로교회가 설립되었다.
무용 소년이 태어난 시대는 갑자기 닥친 8.15 광복이 지난지도 10년이 다 되어 혼란한 사회 분위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아 가고 있었다. 무용은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구원의 복음을 접할 수 있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광복 후 국가적으로 체제가 서서히 잡혀가고 있었으나 8.15이후 전개된 좌·우 이념 대립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서인지 사회분위기가 안정적이진 못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무용 소년은 부모들의 손에 이끌리어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배울 때마다 이 세상삶만이 아니라 새롭게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일해야겠구나라는 소명감이 주어졌다.
고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받고서 해방 후에 기독교 이념으로 새로 출발한 신설학교인 대구 성광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성광학교는 미션계에서 교과목 중에 성경과목도 있고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예배하는 채플도 있어 무용 학생에게는 신앙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고 학교생활에 만족하였다.
그는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신대학교 신학과로 진학해 교단을 위한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대신대학교를 마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학업을 계속하면서 같은 노회 내에 있는 농촌교회(미자립)인 달성군 다사면에 있는 세천교회에서 전도자로서 영성을 쌓아 갔다. 가옥 이래야 30여호도 채 되지 않는 시골 교회였지만 가족적인 분위기여서인지 외로운 줄 모르고 즐거운 하루하루가 전개되었고 목회가 무엇이며 사람 키우는 일, 제자삼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스스로 터득해갔다.

대구 대신대학교 졸업
소련연방 무너진 직후 러시아 선교사 파송
기독교방송·한국찬송가공회 이사 역임
미국 새들백교회 소그룹 모임 도입
“교단탈퇴 목사 재가입시 전소속 노회로만 가능” 결의

박무용 목사는 이후 때때로 고된사역을 하면서도 그때를 회상하며 새 힘을 얻곤하였다. 그는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79년 2월 3일 대구시 상동 498번지 2층 건물(약25평)을 전세로 얻어 도시목회를 처음 시작했다.
1979년 11월 17일 상동(上洞)에서 현재의 황금동 567-6번지로 교회를 이전하여 교회명을 황금교회(黃金敎會)라 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목회하면서도 배움에 갈급하여 총회가 운영하는 목회신학원으로 진학하여 목회석사학위(M.M.)를 취득했고, 대구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교육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그가 황금교회를 개척 선교하기에는 이미 언급한 세천교회 외에 반야월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대구 성도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한 것이 전부이지만, 그의 황금교회 목회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박무용 목사는 교회 개척 후 40년만에 대형교회를 이루었고 지역에서만 아니라 교단의 수장자리인 총회장이 되지 않았는가?
그는 목회사역을 교회 안에서만 이룬게 아니다. 1992년에는 러시아에 강승규, 박선자 선교사를 파송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으며 우리가 전해 받은 복음을 다시 나눈다는 차원에서 앞으로도 지속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활동범위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에장총회 군선교회장으로 전군신자화 운동에도 앞장섰고, 지역 내에 있는 대구 수성경찰서 경목실장으로 경찰복음화 사역에도 열의를 다하고 있다.
한편 모교인 경산에 있는 대신대학교 재단이사로, 기독교방송(CBS) 교단대표 이사, 한국찬송가공회 파송이사로, 총회 세계선교회(G.M.S) 부이사장으로, 총회(102회) 선거관리위원장으로도 심혈을 기울여 봉사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에겐 항상 젊음과 열정이 넘친다. 그의 생김새가 듬직하고 남성다운 호상이어서 만은 아닌 것 같다. 그에겐 어떠한 어려움이나 역경에서라도 박차고 일어서겠다는 용기와 확신에 믿음의 열정이 그의 모습에 가득차 있다. 그는 황금교회 30년사 가운데 교회개척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한 이야기를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황금교회30년사, 같은책 p.157~158).
“황금동 가정집 사글세 기한이 다 되어 안이자 사모의 퇴직금 100만원으로 천막 40평짜리를 사서 천막교회를 세웠는데, 수성구청 직원 20~30명이 달려들어 그 천막교회를 부술려고 하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내일 주일예배를 드려야 한다), 구청장을 찾아가 사정사정을 해 일주일 간의 말미를 얻었다. 또 전두환 정부가 환경을 정화한다고 하면서 천막교회를 뜯으려고 할 때 길에 주저 앉을 정도로 눈앞이 캄캄했다. 이때 우씨라는 복덕방 주인이 지산동 954~3에 교회부지가 있다고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40만원을 주고 계약을 했는데 사실 중도금 줄 돈에 대한 대책도 전혀 없었다. 나는 가창 골짜기에 있는 갈멜산기도원에 올라가 하나님께 온 힘을 다해 기도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동생인 박삼용과 대구노회 여전도회연합회 김숙애 회장, 수산교회 조응대 장로 장모님이 가지고 있는 금패물을 합해 500만원의 거금을 모아 보내주었다. 이 헌금으로 계약한 땅값을 다 치루고 등기까지 완료하는 기적을 체험했다.”
“또 교회당 건축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박주열 장로와 김우선 권사님이 집을 담보로 농협에서 500만원을 차용할 수 있어서 건물을 신축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훈련을 시키시는 주님께 늘 감사했다.” 그는 다시 읊조린다. “나의 목회철학은 폐결핵으로 사선을 넘은 나를 일사각오 정신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 중국선교와 지역 복음화를 위해 전도와 기도하는 것이었다. 교회 분위기는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여 매우 정겹고 가정적이었다. 지금도 피곤하고 고달플땐 그때를 회상하며 새 힘을 얻곤 한다.
박 목사는 계속 전도프로그램을 정착시키기 위하여 네비게이토선교부에서(대구지회 주관) 6개월 과정, 대학생성경일기회(UBF)에서 6개월 훈련을 받고 시도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다시 미국 L.A에 있는 새들백교회 랄프네이버 목사의 교회성장세미나에 참가 교회에서의 제자 양육훈련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회에 정착을 위해 소그룹 모임과 교인양육프로그램에 전력을 다한 결과 정착에 성공하게 되었다.
오늘까지 그는 자신의 목회철학을 하나님께서 내게주신 ‘목적을 따라 세워져 가는 황금교회’라고 고백한다. 소그룹 활성화 교인의 제자화 운동이 교회성장의 밑거름이란 진리를 터득한 것이다.
그가 재임했던 예장총회 제100회기의 중요 결의안을 보면, ① 총회 감독권 강화를 위해 규칙 제3장 8조 신설을 보완하고 산하기관 정관에 조항을 삽입토록 하다. ② 총회헌법,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예배모범은 노회에 수의하기로 하고 정치와 권징조례를 한 해 더 연구하기로 하다. ③ 상설위원회로 총회정책연구위원회, 총회역사위원회, 교단연합교류위원회, 통일준비위원회, 세계교회교류협력위원회를 설치하다. ④ 교단을 탈퇴한 목사나 교회가 재가입할 경우 소속되었던 노회로만 가입할 수 있다(제100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 이승희, 김창수편 예장총회 출판부 서울 p.43 참조).
박무용 목사는 2015년 9월 14일부터 18일까지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0회 총회에서 영광스러운 총회장에 선출되었고, 그는 1년간 대과없이 총회장 직임을 완수했다.
박무용 목사는 사모 안이자와 슬하에 2남의 자녀가 그의 뒤를 이어 믿음을 대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열전은 97. 제100회 총회장을 끝으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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