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기획 / 한국교회의 도전과 응전
2018/01/22 14:1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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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 바로 세우고 천민자본주의 배격해야
만사형통 하는 기복주의와 세속적 성공주의는 교회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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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기회다
작금의 한국교회를 향해 다들 ‘위기’라고 한다. 첫째는 교세가 줄어든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음세대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것이며, 셋째는 목회자들의 정신이 세속주의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에클레시아이다. 이는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라는 뜻이다. 성령의 인도로 이 공동체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그래서 형제요 자매라 부르는 것이다.
초대 사도들의 교회는 생물학적 혈연관계를 넘어 모인 이들이었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없이” 마치 한 집안에 사는 혈연공동체처럼 유무상통했다. 그래서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행 4:32-34). 그리고 이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이것이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던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이 역사와 민족과 문화의 변천에 따라 조금씩 그 모습이 바뀌긴 했지만, 그 교회의 원리는 그대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원리가 변질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것이다.
교회는 유기체임으로 원형이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다. 왜냐면 사회의 형태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회 속에 있는 교회의 형태는 변화해도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교회의 정신, 즉 교회의 본디 모습은 변하지 않고 수천년의 역사의 변천 속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과연 성경적 초대교회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국교회는 성경적 교회론에서 볼 때 모두가 ‘이단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 기독교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교회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가 주류를 이룬다. 개혁교회는 16세기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교리와 신학을 고쳐 성경으로 돌아간 교회이다. 개혁교회는 그 시대에 ‘개혁이 완성된 교회’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속 ‘개혁하는 교회’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 개혁교회의 정신을 떠나 마치 중세의 로마교회처럼 교권과 재산과 명예욕에 찌들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위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우리사회에서 숫적으로는 주류종교이지만, 그 내용적으로는 아직 메조리티(Majority)가 아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권을 탐하고, 재산을 늘리며, 명예욕에 심취할 때가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는 문화정책에서 기독교를 아직도 ‘외래종교’로 분류하고 있고, 타종교는 기독교를 견제할려고 온갖 음해를 일삼으며, 사회는 서구문화의 옷을 입고 들어온 기독교를 전통문화의 파괴범으로 공격하고 있는 마당에 겨우 쓸만한 에배당 하나 지을 만한 여유가 생겼다고 목회자들이 엉뚱한 세속적 욕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같은 세속주의적 도전에 새해 한국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응전해야 할 것인가?
첫째, 심각한 기복주의로 변질된 강단을 회복해야 한다.
이미 한국교회의 강단은 무속적 기복주의에 점령당한 상태이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고’ 부활한 에수님을 ‘만났다’는 증언에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를 증거하는데 있었다. 그것이 설교의 전부였다. 제대로 된 교회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그런 교회는 지금도 1년 내내 교회의 의식을 부활절에 맞추어 진행한다.
설교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말씀과 기독교의 역사적 공동체가 체험해온 성령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개인의 신앙체체험을 과도히 떠벌리는 것은 옳은 설교가 아니다. 더우기 개인의 가정사가 만사형통하고, 무병장수하며,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입신출세하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무리에게 더하시는 은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 더하시는 은총에만 현혹되어 ‘말씀, 말씀’ 하면서도 진정한 말씀은 외면하고 설교에서 자신의 은사체험이나 신비체험을 앞세운다.
둘째, 물량적 성공주의는 세속주의로서 교회의 적이다.
교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생각이다. 이는 서구의 청교도적 자본주의 훈련을 받지 못한 데서 오는 오류이다. 자본주의는 칼빈주의자들의 근면성실과 성경의 청지기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투기나 한탕주의에서는 결코 자본주의의 정신을 배울 수 없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有錢可使鬼)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적일 뿐 아니라, 교회의 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회도 돈이 있으면 예배당을 멋지게 짓고, 교육관도 크게 늘리며, 폼나게 교인들을 몰고 다니면서 하나님도 마음대로 ‘영광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는 말씀은 오늘에도 진리이다.
셋째, 개교회주의는 비성경적 교회론이다.
한국 기독교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할 것없이 개교회주의가 심각하다. 개교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라는 지체의식이 없어진다. 개교회주의는 교회와 교회간에, 목회자와 목회자간에 상대적 빈곤감을 부추기게 하고 동료의식을 약화시킨다. 마치 타락한 천민자본주의 시장처럼 교인을 많이 모운 교회는 많이 먹고, 자기네 교인이 한 사람이라도 이웃 교회로 옮겨가면 그 교회를 가차 없이 ‘이단’으로 몰아붙인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산 형제를 정죄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이런 일을 예사로 저지른다. 이런 것은 한국교회를 사도성의 계승권을 가진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라기보다 ,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들의 친목단체쯤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강춘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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