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기획 / 한국교회의 도전과 응전 (2) : 한국교회가 왜 사회로부터 불신을 받는가?
2018/02/03 10: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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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만사형통하는 ‘기복’<祈福>과 하나님의 ‘축복’<祝福>은 다르다
개교회주의 관행 극복하고 성경의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답이다


죄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강물같이 흐르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세상에 존재한다. 즉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으로 악을 이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교회가 그 사회로부터 불신을 당한다면 어떻게 그 존재 목적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작금에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불신 당한다는 말을 듣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국기독교가 복음에 대한 소명감도 없고, 열정도 없는 목회자들로 인해 수준 미달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당은 마을마다 골목마다 경쟁하듯이 늘어나 지금 한국교회에는 안수받은 목사가 16만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수준 미달의 목회자가 갑자기 늘어났다.  여기에는 수백 개로 갈라진 장로교단이 한몫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 교단 간판 아래 늘어선 교단 신학교에서 배츨되는 목회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이들 중에는 제대로 된 커리큘럼도 없는 신학교에서 한두 학기 공부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개척교회 간판을 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갈갈이 찢어져 있는 현재의 한국기독교로서는 이를 통제할 기능이 어디에도 없다.
둘째, 일부 목회자들의 윤리 도덕성의 상실이 전체 교회를 불신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기독교 신앙의 도덕성이 사회로부터 의심받고 있다. 거기에다가 여타 세속적 종교들과 차이 없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며 기복신앙을 팔고, 세속적 물량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교회에서도 우대하며 중용한다. 심지어 돈을 좀 많이 가졌다고, 또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다고 하여 교회에 얼굴을 내밀자 말자 집사로, 장로로 세운다. 신앙논리에 따라야 할 교회의 직분이 돈과 팔려 좌지우지 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목회자들의 세속적 욕심이 지나쳐 교회 안에서조차 교회지도자들이 불신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도시의 일부 목회자들은 그 신분을 망각하고 터무니 없는 호화생활을 한다. 그러다보니 거기에 못미치는 다른 목회자들에게 상대적 빈곤감을 안긴다. 심지어 목회에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어떤 인사들은 은퇴위로금이라는 이름으로 ‘퇴직금’을 수십억원씩 챙겨서 교회를 떠나므로 교인들을 크게 실망시킨다. 이런 교회의 모습은 고스란히 세상 사람들에게도 비친다.
넷째, 소위 ‘교회세습’으로 교회의 본 모습이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세습은 선대(先代)가 목회하던 교회를 그 자녀가 이었다고 하여 비난받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수천명 수만명씩 모이는 대형교회 중심으로 교회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체 한국교회에서 볼 때는 그 숫자는 상대적으로 얼마되지 않지만 세습되는 그 교회들이 지역사회와 한국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가 한묶음으로 매도되고 있다. 이들 세습교회들은 “교인들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한국교회가 불신당하는 원인 중 하나임엔 틀림없다.   

교회분열의 원인 제공
이런 이유들로 인해 교회가 지닌 고유한 도덕성이 상실되어 그 권위가 불신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인들도 목회자의 권위나 교회의 치리를 불신하여 분쟁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도 교회의 권위를 우습게 본다. 거기에다 빈기독교 집단들이 끊임없이 교회의 이런 모습을 확대 재생산 하여 세상에 까발리며 공격한다. 여기에 일부 상업주의 언론과 ‘교회개혁’을 앞세운 교회 내의 엔티들이 마치 기독교를 부패한 집단인양 매도한다.
결론적으로 한국기독교는 이같은 세속적 도전을 언제까지 방치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 도전에 응전하여 교회의 본디 모습을 사회 앞에 내보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첫째, 다시 강조하거니와 가장 급선무가 교회의 강단에서 기복주의적 신앙을 추방하는 일이다. 기복주의자들은 성경의 ‘축복신앙’을 왜곡하여 기복과 기독교 신앙을 혼돈케 만든다. 그리하여 목회자의 제사장적 권위를 강요하고, 교인들을 우민화 하여 신앙과 삶을 유리시킨다. 기독교 신앙은 소시민이 잘 먹고 잘 사는데 있지 않고, 죄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어 그의 신앙과 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도록 하는데 있다. 따라서 그의 신앙고백과 그의 삶은 하나여야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교회에서 물량주의적 성공주의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크고 화려한 교회당을 짓고 이름난 감투를 쓰는 것만이 목회 성공이 아니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으로 복음을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가치관을 교인들에게 바르게 주입시키는 목회자는 모두 성공자이다. 따라서 교계에서 돈있다고 우쭐거리는 목사들은 오히려 멸시하고 멀리해야 한다.
셋째, 기독교의 개교회주의의 관행을 극복해야 한다. 흔히 가톨릭교회는 교황 중심이어서 하나로 결속되어 있지만,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개교회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는 틀린 생각이다. 개교회주의는 교회들의 연대와 사귐이라는 교회의 고유한 원리를 허구화 시킨다. 마치 자본주의 논리마냥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먹어도 되고,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먹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교회를 이기주의 집단으로 전락시킨다. 교회는 ‘하나’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70%가 장로교회이다. 장로교회는 개교회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기독교 언제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세상에 보일 수 있을까?
성경은 초대 예루살렙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니라”(행 2:42-47).
<강춘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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