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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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생수가 터져 나오기 전 나오는 건수를 암반석에서 나오는 물이라고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옛날 가난할 때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이 양식집에서 돈까스를 먹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본 메뉴의 고기 튀김이 나오기 전 스프만 먹고 와서 돈까스를 먹었다고 자랑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런 엉터리 같은 신비적인 사이비 듣고, 보고, 말하게 한 허무맹랑한 삶에 속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출 20:23).
지금까지 이야기는 우리가 어렵다고 하는 이유를 영화 한 편을 보듯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가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십계명을 주신 사실 속에 있지 않은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선 비져서-신을-너를 위하여, 온갖 것을 혼합하여 만드는데 능숙해 있는 현대 교회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온갖 학문과 이론을 인간의 욕구와 갈망을 해갈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사용하여 형통의 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토단 위에 번제와 화목제가 있는 곳에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토단(土壇)이란 흙 자체입니다. 사람의 것이 가입되지 않은 원래의 자연 그대로의 단입니다. 인간의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도구나 방법이 아닙니다.
번제는 희생제물로 제물을 태워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행위에 의한 향기입니다. 죄를 완전히 소멸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것, 학문까지 다 내가 그것 때문에 수십 년간 소중히 쌓아놓은 모든 자료들까지 다 불태워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제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화목제는 친교제입니다. 화목제는 어떤 특별한 의무를 면하는 헌신의 목적과 고통의 때에 약속한 맹세를 이행할 목적으로 그렸던 것입니다(적대감을 제거함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소통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위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출애굽기 20장 25~26절에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기 쉽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글을 쓴 사람처럼 자상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하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함이니라” 이 말을 그냥 주은 돌, 아무렇게나 생긴 돌, 창조하실 때 그 모습 그대로의 자연석을 주어서 하라는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그랬듯이 있는 것 즉 적고 많고가 아니라 생김새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예술적 손끝이 닿은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 얼마나 편리하고 쉬운 일입니까. 예수님처럼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는 인간의 최소한의 성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방 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우리의 정성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음 너를 창조하고 복 주신 그대로입니다(창 1:27-28). 그리고 그래도 찌꺼기가 남아 있을 것 같아 ‘정으로 쪼아서 다듬은 돌로 할 때는 부정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곧 부정한 일에 능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아무 관계 없는 이교도의 신당을 짓는데 능숙해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조각가의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세상 사람들의 우상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우상 장수를 했다는 일을 반복하여 우상을 만들어 기업형으로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일 뿐 교회나 목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다음 출애굽기 20장 26절에서 쌓아올린 것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너를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저는 이 말씀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짐을 느끼며, 감사했습니다. 어린아이라도 홋치마를 입은 여자가 앞서 계단을 오른다면 그의 하체가 뒤 올라가는 사람의 눈이 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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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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