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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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은 예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제 삼일에 살리심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이 말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혹은 하나님과의 언약대로 대속적인 죽음을 죽으시고, 언약대로 살아나셨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며 바울이 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당시에도 수 많은 부활의 증인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말한다. 예수님 부활의 역사적 증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절을 맞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언약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대속적이고 언약적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대신한 속죄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다 죄인들이고, 우리는 죄의 삯을 지불해야 할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죄 값을 예수께서 그의 죽음으로 대신 치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후,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를 대신하여 그의 창조물을 관리하고 다스릴 왕으로 세우셨다(시 8:5-6).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 사이에 생명을 담보한 위계질서를 세우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고대 근동 세계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계약적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조물과 언약적 관계를 맺으신 것이다. 따라서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언약적 연대성을 가졌고, 아담은 이 언약적 연대성의 대표자가 된 것이다. 아담은 언약적 연대성의 대표자가 됨으로 그의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아담과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말하자면 아담의 범죄는 모든 피조물의 범죄가 되고, 아담에게 내린 죄와 형벌은 모든 피조물에게도 함께 적용되는 죄벌이 된 것이다(창 3:17; 롬 5:12). 우리 모든 인간이 아담과 함께 죽음을 선고 받은 받은 것은 바로 이 언약적 연대성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족해하셨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실 때 마다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의 창조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매우 좋았다.”고 말씀하심으로 그의 창조에 대한 큰 만족감을 표시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언약적 반역으로 언약적 저주가 임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편하실리가 없다. 그래서 롬 3:26에는 하나님께서 “이때에 자신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자신도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는 분이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도 의로우시려고” 하신 일이 무엇인가? 아담을 대신한 새 아담을 통하여 아담과 아담의 연대성 아래 있는 모든 죄인들의 죄 값을 치르게 하고, 그를 통하여 새로운 왕국을 세우시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말을 쓴다.”(롬 5:14). 여기서 모형은 “원리”의 모형을 말한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의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다 죄인이 되는 언약의 원리를 적용하여 새 아담을 세워 그로 아담을 대신한 속죄를 하게하고, 그를 살려, 그를 새 언약의 대표자로 세우고, 그의 연대성 안에 들어오는 자들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살리고,  그들을 통한 새로운 왕국을 세우시겠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죽음을 맞게 되는 이 연대성의 원리를 모형으로, 한 사람의 속죄와 의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고 자유와 생명을 얻는 원리를 적용하여, 모든 죄인들을 살리려 하시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원리를 염두에 두고 바울은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type)이다”라고 말한다. 이때에 실형(antitype)은 물론 새 아담,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바로 언약적이고, 대속적인 것이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언약적이고, 필연적이다. 새 아담이 아담의 실형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는 여자가 낳은 자여야 한다(창 3:15). 또한  그는 뱀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단의 발 머리를 짓밟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진 신적 존재라야 한다. 그리고 그는 아담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죄가 없어야 한다. 이 세상에 이러한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아담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피조물은 어느 누구도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 결국 이 세상에는 하나님 밖에는 없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조건에 맞는 존재를 새롭게 창조하실 수는 있겠지만 이미 하나님께서는 새 아담을 “여자의 후손”으로 지목하셨다. 따라서 새 아담을 아담처럼 흙으로 새롭게 창조하실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이 온 우주에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존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 밖애는 없다. 하나님께서 직접 새 아담이 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녀의 몸을 빌려 성육신 하신 이유이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아담의 실형으로 인간 세계에 오셔서 해야 할 일은 아담의 죄를 대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고, 죽은 후 부활할 것을 반복적으로 가르치시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적 죽음이라고 설명해 주셨다(막 8:31-38; 마 16:21-28; 눅 9:22-27). 심지어 당시의 대제사장 가야바도 예수님의 죽음의 필요성을 말하며 그것이 개인의 범죄에 대한 죄 값으로 죽는 것이 아니고,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의 민족과 백성을 살리기 위한 희생적인 죽음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예언하고 선포했다(요한 11:49-52).
물론 이것은 로마 사람들이 반역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피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꾸민 음모였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아담의 죄 값을 치렀다면 이제 죄와 죽음은 더 이상 아담과 그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자들에게 그들의 세력을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먼저 새 아담, 예수님부터 살려야 하고, 이어서 새 아담과 그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자들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 아담 예수님의 부활은 필연적인것이다. 만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우리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그 죄 값으로 죽게 되었다는 원죄의 원리가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원죄도 없고, 우리 죄인들의 부활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핑계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 예수님을 살려 내시어 사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으로부터 살리심으로 아담과 더불어 그의 새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려 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다. 언약적 연대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의 왕이 되셨듯이 이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 아담이 되셨다(골 1:15), 그리고 만물의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가 되셨다. 우리 성도들은 이 새 아담, 새로운 왕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오 (왕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충성 맹세를 함으로 예수님의 새 왕국의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은 새 백성이 되는 것이다(골 3:10).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담의 죄를 대신 지고 속죄의 피를 흘리신 새 아담으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고, 새로운 왕이 되어, 옛 아담과의 연대성 때문에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던 자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 사이에 새 언약을 세우고, 우리 신자들을 새 언약의 연대성 안으로, 그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새 언약의 백성으로 불러들이는 사건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언약적이다. 언약적 틀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하고,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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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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