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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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렇게 생긴 막돼먹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조차 녹는 이해되는 죄책감을 벗어난 상태 누구의 가르침이나 소리지름이 없는 경각심이나 두려움도 없는 상태 누구의 날카로운 비판도 없는 그런 상태가 구속 받은 사람들에게 기대하시는 거룩일 것 같습니다.
 현대교회의 형태로써는 가장행렬 같은 위선적 경건의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보다 오늘 교회를 성전으로 둔갑하여 경계를 그어 구별해 놓은 인테리어가 아닐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위선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높은 문턱을 만들어 놓고도 사람을 부르는 전도라는 위선적 슬로건과 표어가 얼마나 두려운 일을 겁도 없이 행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천국 가라고 소리 지르는 그런 사람들이 거룩의 본질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그보다 ‘나 같은 죄인’이 진정한 자유를 얻음에 대한 삶이 진정한 거룩일 것입니다. 성경구절을 드려대며 연대별로 신학자라는 사람의 이야기나 원문이나 성경원본의 기록을 나열하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현장입니다.
현장은 내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거룩히 지키라는 대로 내가 살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의미는 노동 후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리적 건강을 위한 몸의 법칙입니다.
천하고 귀하고 어른과 아이들, 도우미, 운전사, 청소부, 고집불통, 깡패, 배고픈 사람, 장애우, 다문화 가정 모두가 칸막이 없는 곳에서 앉든 서든 간에 명품 옷이든 시장통에서 싸구려 옷을 입었든 뚱보든 말라깽이든 관계없이 주님이 계심에 대한 소통이요, 관계입니다.
헤이글러(Dr.Haegler) 박사의 연구에서 “사람이 낮에 일하면서 소모된 산소의 분량을 밤에 쉬는 것만으로는 다 회복하지 못하므로 엿새 동안에 부족하였던 산소를 하루 쉼으로 회복하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라고 합니다.
짐승을 시험해 본 결과도 이레 중 하루를 쉬게 하고 엿새 동안 일을 시킨 결과 더욱 능률이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주일을 지키지 않는 데서 나타나는 무서운 결과는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인간과 관계된 모든 것들까지 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을 어떻게 지키는 것인가?
다시 하나님을 신으로 만든 다른 신을 시각적 대상으로 만들고 그의 이름을 구술 외우듯 부르짖는 망령됨이 신으로 만든 다른 신을 만나는 날로 설명된 현대교회는 진정한 안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신을 만나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가 도구가 되고 자동차가 도구가 되고 가족 전체가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가정이 얼마나 소란스러운가?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는 다른 신의 존재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존재인가
최소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원하신 복되게 하신 속에서의 기쁨이어야 할 것입니다.
격식이나 의식에 묶여진 꽉 째인 옷이나 신발을 신은 불안함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의 버킹검의 가족은 아니어야 합니다. 재벌 집의 며느리는 아니어야 합니다. 주일이란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 후, 파김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명절날 가족 방문이 싸움판이나 허리가 부러지는 후유증은 없어야 합니다.
목회가 기업이 되면, 재벌 주는 호화롭고 나머지는 스트레스입니다. 최소한 교회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주일은 주님을 만나는 장소가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한 사람들의 코이노니아입니다.
교회가 기업에서 해방하면 빈부귀천이나 남녀노소나 가방끈이 길든 짧든 간에 유무상통한 곳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올 것이며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높은 교회 문턱이 바울선교회의 초기 시작한 전주 안디옥 깡통교회처럼 모난 사람들이 등 붙이고 살 수 있어서 그 사랑이 세계까지 번져갈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기업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구속받은 자들이 즐겁게 살아갈 이야기였습니다. 나의 부드러운 모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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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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