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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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멘>하면 스페인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소설 <카르멘>을 쓴 프로스펠 메리메는 물론, 그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작곡한 조르주 비제도 프랑스인. 두 작품은 프랑스어로 쓰여 졌다. 스페인은 작가와 작곡자가 무대로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카르멘>을 못마땅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게다가 주연 카르멘도 스페인 사람이 아니다. 집시로 불리는 방랑민족이고, 그 상대역 돈 호세도 엄밀하게는 스페인 사람이 아닌 나바라 사람. <카르멘>이 발표된 1845년에서 몇 해만 거슬러 올라가면 엄연한 외국인이었다. 소설<카르멘>에서 호세는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만약 스페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나쁘게 말한다면 그냥 두지 않을 테야!” 분명하게 자신을 스페인 사람과 구별 짓고 있다. 최근에도 우리는 나바라를 포함하는 바스크와 스페인의 관계가 순탄하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지 않았던가.         
<카르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카르멘이란 이름의 집시 여인. 강렬한 개성과 매력을 내뿜는 팜파타르의 대표라 할 만한 여인이다. 오페라에서는 소프라노가 아니라 메조소프라노의 몫이 되어 있다. 팜파타르에게 휘둘리고 있는 상대역 호세는 바리톤이나 베이스가 아닌 테너. 그리고 청순한 이미지의 여인을 대표하는 호세의 약혼녀 미카엘은 소프라노이고, 호세의 라이벌 투우사 에스카밀리요는 바리톤이나 베이스가 맡아서 사내다움을 뽐낸다.   
참고로 알아 둘 일은 메리메의 원작에서는 청순의 이미지 미카엘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니까 오페라에서만 박력 있는 메조소프라노로 테너 호세를 휘두르는 카르멘과 대조적으로 가냘픈 소프라노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원작자 메리메는 한 여인이 미인일 수 있기 위해서는 서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메리메는 한 스페인인에게서 얻어들은 정보라면서, 이를테면, “세 가지 검은 것”을 가져야하는데, 그것은 눈, 눈썹, 속눈썹이고, 세 가지 화사한 것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손가락, 입술, 머리칼과 같은 것들이란다. 그러면서도 정작 메리메 자신이 스페인 코르토바에서 만날 수 있었던 칼멘은 결코 그와 같은 미인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는 못했다고 했다.
“살갗이 매끄럽긴 했지만, 구리 빛에 가까웠다. 눈은 사시이긴 해도, 눈 꼬리가 길고 총총해서 아름다웠다. 약간 두터운 듯 싶은 입술은 단정해서 가끔 껍질을 벗긴 아몬드보다 더 흰 이빨을 드러내곤 했다. 약간 굵어 보이는 머리칼은 칠흑빛으로 까마귀 날개처럼 푸른빛이 돌고 있었다...”
이만했으면 독자는 메리메가 그리고자하는 요염한 카르멘의 모습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한 여인이 아름답다는 찬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서른 가지나 되는 조건을 갖추어야 하기 보다는 메리메가 쓴 것처럼 “그녀에게는 이상한 야생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첫 눈에도 놀라웠지만, 이후 오래토록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순진하기만 한 병사 돈 호세는 카르멘의 무엇에 혹한 것일까. 세빌리야 담배공장의 여공 카르멘이 호세를 사로잡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가 메리메는 호세의 입을 빌어 이렇게 표현한다.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빨간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너무 짧아서 하얀 비단 양말이 그대로 보였는데, 양말에는 구멍이 몇 개나 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빨간 모로코 가죽으로 만든 신발은 불꽃같이 진한 빨간색 리본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병사 호세는 호송하던 범인 카르멘을 도망시키고 만다. 그리고 철창신세가 된다. “내가 왜 이런 벌을 받게 되었던가. 나를 가지고 논 저 보헤미아 계집 때문이 아닌가! 지금쯤 그녀는 어디에서 도적질을 하고 있을 터. 그딴 여자 때문에 내 일생을 망치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그녀를 잊어버리지 못한다. “코앞에서 보여준 구멍 뚫린 양말이 늘 눈앞에 아롱거리는 것을.”
여인을 미인으로 만드는 서른 가지 조건이 한 사나이를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구멍난 양말이 한 사나이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르멘>을 읽은 것은 막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당시 유일하게 접할 수 있었던 문학전집인 일본 “신초사”판을 통해서였다. 오페라에 밀려서인지 지금은 거의 읽혀지지 않고 있는 소설로 알고 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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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멘’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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