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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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파 그림에 관심을 가지는 이라면,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을 포함하는 고갱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이고, 기회가 되면 가서 감상해보리라는 꿈을 지니고 있을 만도 하리라. 그러나 막상 밀려드는 관람자들 틈에 끼어들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보면,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지레 짐작에, 낡아빠진 화첩이면 어떻고 넷에서 찾은 사진인들 어떠랴 하고 자위해보기도 할 것이다.   
폴 고갱(1848-1903)이 마흔 한 살 나던 해에 그렸다는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앞에 있다 치자. 그림 왼쪽에서 그가 이전에 그린 <노란 그리스도>를 다시 보게 된다. 고갱의 그림에서 또 하나의 고갱의 그림을 보게 되는 셈.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좌우가 바뀌어져 있음을 쉬 알아차리게 되면서, 고갱이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을 그리듯 작품을 구성했음을 알게 되리라.
그림 오른 편에 있는 흉물스러운 얼굴이 있는 항아리. 알만 한 감상자라면 고갱이 제작한 <항아리>를 재현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리리라. 서너 해 전 생활비를 벌어보려고 시도했던 도예작품이란 배경까지 알고 있다면 더욱 많은 것을 짐작하게 하는 건더기가 되어 줄 것이고. 그러니까 <노란 그리스도>나 <항아리>는 우연히 거울에 비쳐진 것들이 아니라, 고갱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구성하기 위해 이용한 자료로 그려 넣은 것이다.
서둘러 말해본다면, 고갱은 <노란 그리스도>와 도자기, 그리고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아울러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보려 한 듯하다. 화가로서 미술적으로 색채와 구성을 궁리하기 이전에 자신의 파편과도 같은 세 자료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탐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림 중의 그리스도는 유럽인 고갱을, 항아리의 험상궂은 얼굴은 제 2의 고향이 될 타이티의 야만인 고갱을 상징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유럽인과 야만인 사이에서 어느 쪽에서 속할 수 없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폴 고갱(1848-1903)이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을 그린 것은 그의 나이 41세가 되는 해. 타이티로 떠나기 6년 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갱은 저널리스트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로비스의 장남으로 파리에서 태어나지만, 당시의 정치 상황에 떠밀려 망명하는 아버지를 따라, 외가가 있는 남미 페루로 떠난다. 그러나 아버지는 도중에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남매를 데리고 리마까지 간다. 고갱이 7세가 되었을 때, 오를레앙에 살던 친 할아버지가 다소의 유산을 남겨주었기로 프랑스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파리에서 옷 가게를 꾸리며 고갱을 오를레앙의 기숙학교에 보낸다. 리마에서 자란 고갱은 프랑스에 정을 붙일 수 없었던지 졸업하자마자 선원이 되어 돌아다니다가, 23세가 되어서야 파리에 있는 한 증권회사에서 자리를 잡는다.   
실크헤트에 프록코트를 걸친 증권사 직원으로 프디 브루조아의 딸과 결혼해서 다섯 아이의 아비가 되어 있는 고갱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게 화가가 되기 직전의 고갱의 모습이었다. 수입도 좋았던 모양으로 당시 유행하던 인상파의 그림들을 수집하는 한편 일요화가라는 취미를 지닌 어엿한 신사. 수집품 중에는 마네, 세잔느, 피사로, 르노아르. 모네의 작품이 있었다니.
취미로 그린 그림이 싸롱에 입선하더니, 1881년에는 인상파전에 참여한다. 그러던 참에 증권이 폭락하고 금융공황이 시작되자 고갱은 가족과 의논하지도 않고 회사를 그만두고 화가가 되겠노라 선언했다는데...
화가지망생이 된 남편을 버리고 친정 네덜란드로 돌아간 아내를 찾아가 화해를 청해보지만 아내는 황당한 남편을 용서하려하지 않았다나.
그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그나마 생활비가 적게 드는 타이티 밖에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젊었을 시절의 선원경험을 내세워 배 삯을 때운다면 타이티 행은 문제없을 것이라 계산했을 수도.
이쯤해서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오른 편에 있는 야만스런 모습의 사나이를 본 딴 <항아리>가 어렸을 때 리마에서 만났던 토인이자 앞으로 가서 살아야할 타이티인의 모습이라면, 유럽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와 야만인에 끼인 자신의 모습을 그린 마흔 한 살의 사나이의 심정을 알 것도 같지 않는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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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의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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