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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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물을 포함하는 미술작품은 보는 이를 압도할 수는 있지만, 음악처럼 복종을 강요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키프로스의 제논이 말했듯이 “사람에게 귀는 둘이지만 입은 하나뿐”이라는 교훈은 이런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본의 물리학자이며 수필가 데라다니(寺田寅彦)는 <감 씨>라는 수필집에서 “눈은 언제든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자신이 자신을 닫지 못하게 되어 있다. 왜 일까?”하고 묻고 있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시각은 눈을 감으면 차단되지만, 귀는 닫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인간은 듣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귀를 막는다”는 말은 듣지 않아야할 악한 말이나 야한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행하는 행위이거나, 수련을 위한 훈련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두렵고 무서운 무엇으로부터 도망쳐보려는 의도를 나타내기도 했다.  
인간의 귀는 원래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감각기관으로 생겨났단다. 중력을 느끼고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감지하는 평형감각기관은 생물이 진화해온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감각기관의 하나라고 한다. 물의 흐름이나 진동을 감지하는 감각 세포가 더해져서 육지로 올라온 척추동물에게 공기의 진동을 전달하기 위한 중이(中耳)가 생겨났다는데 그 중이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 아가미였다나. 육지에서는 쓸모가 없어진 아가미와 그 주변의 뼈의 일부가 귀로 발전했다고 한다.   
숲이나 들판에서 생존에 골몰하던 원시인에게는 적의 움직임이나 기색을 알게 하는 정보를 감지하는 것이 곧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랬을 때 귀는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기관이 되어주었다. 눈을 감고 휴식을 하거나 잠을 잘 때라도 귀는 열어두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는 <음악에 대한 미움>이라는 책에서 “듣는다는 것은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라틴어로 “오바우디레(obaudire)”는 “듣다”를 의미하는 말인데, 바로 이 단어가 프랑스어 “obeir”(복종하다)로 발전했다고 한다.
키냐르는 말한다. “음악을 대하면 귀를 닫을 수가 없어진다. 음악은 권력이고 모든 권력과 결합한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 플라톤은 철학강의에서 훈련과 음악, 전쟁과 음악, 사회적 히에르라키와 음악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지를 않았다.”
리듬과 선율에 인간의 움직임을 싱크로(동조)시켜서 단체의 움직임을 통솔하기는 아주 쉽고 또 많은 권력이 그렇게 해왔다.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싱크로 시킨다고 하는 노릇은 조종하고 복종케 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러한 음악과 리듬의 성질을 이용해서 전쟁마당에서 군대의 음악이 군의 규율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병사들을 싸움터로 내보내는 흥분제로 사용되었다. 많은 군가나 행진곡, 그리고 국민을 고무하기 위한 국가나 애국가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술의 나라요 선진국으로 알려지고 있는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만 해도 그렇다.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갖추라! 전진, 전진!/놈들의 더러운 피로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음악은 전쟁과 혁명의 도구였다. 민중과 군인들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혁명 사상을 불어넣기 위해서 이용되었다. 노랫말이 없는 북 소리 만으로도 민중을 공포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오스만 터키군의 위협 앞에 노출된 동유럽에서는 터키군의 북소리만 들고도 민중이 벌벌 떨어야만 했다. 그 효과를 충분히 알고 있는 오스만 군은 아예 군 선봉을 군악대가 맡게 했다. 악기는 무기이상으로 심리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다.  
파스칼 기냐르는 말했다. “모든 예술 가운데서 음악만이 1933년부터 1944년에 걸쳐 독일군이 행한 유대인 복멸운동에 협력한 유일한 예술”이라고. 우리는 그런 음악을 호로코스트의 음악이라 한다. 호로코스트란 “구운 희생제물”이란 뜻의 그리스어. 독일이 약 600만의 유대인을 죽이는 과정에서 음악은 큰 몫을 했다. 또 전쟁을 평화로 위장하기 위해서 음악이 사용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귀를 가지게 된 인간에게 소리는 무서운 흉기가 되기도 했다는데, 예수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말했을 때, 들을 귀는 한층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일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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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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