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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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여행의 백미는 대성당 감상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놀랄 일이 한 둘일까 마는, 인파에 떠밀리며 번번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사가 진행 중인데도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을 붙들고 방문목적을 따지는 노릇도 쉽지 않을 터이지만.
규모가 큰 성당은 미사가 진행되는 내진(內陣)이 아니라면 구경꾼도 돌아다닐 수 있다. 종교적인 건축물에서 가장 안쪽 뒷벽에 제단이나 유사한 장치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톨릭교회, 적어도 로마네스크 이후의 가톨릭성당은, 그렇지가 않다. 제단과 내진 옆이나 뒤편에 걸어 다닐 수 있는 측랑(側廊)이 있어서 성당에 들어선 사람은 측랑을 통해서 교회 안을 한 바퀴 돌아 볼 수가 있게 되어 있다.
지난날에는 사교나 다른 성직자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는 내진에 한정되어 있었고 나머지 공간은 교구를 대표하는 신자들이 관리를 맡고 있었다나.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신앙행위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행사도 열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청사가 없을 경우, 관리들이 성당에서 집무하거나 회의를 열기도 했단다. 교권과 왕권이라는 두 기둥이 국가를 떠받치고 있었을 시절인데 어찌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성당의 공간이 비어있으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고, 더러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는데, 포도주에 취해서 낮잠을 자는 이도 있었다니.   문이 닫힐 때까지 나름대로 명상도 하고 휴식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대신하고 있는 지도.  
한 도시나 마을에서 성당은 시민회관의 역할도 감당했던 것이다. 고딕 시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도시마다 대성당 건축 붐이 일어 난 데에는 이러한 당시의 사정이 한몫했을 지도 모른다. 건축비를 염출하는 것은 시민이었으니 말이다. “다른 도시의 성당에 밑지지 않는 훌륭한 성당건축을!” 하는 구호에 공감할 수 있는 동기에 불을 붙여주었을 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높이 100미터가 넘는 뾰족탑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자금이 모자라 한껏 마음먹고 시작한 공사가 중단되는 수도 없지 않았다. 그런 때면 자금을 염출한 시민은 그나마 자신들의 힘으로 해낸 것 까지를 바라보면서 나머지는 후세들에게 미루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건축과는 달리 당시의 건축은 한 번에 모든 것을 완성하지 않고, 부분별의 완성을 예상하고 건축에 임했다고 한다. 그래서 완성한 부분만을 이용할 줄도 알았다. 또 뒤를 이어 착공하는 쪽에서도 그 선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그들이 이어갈, 그리고 그들의 주머니를 풀어서 해야 할 작업이 어떤 부분 어떤 모양이 될 것인지를 어느 정도 내다 볼 수 있었다. 밀라노 대성당은 착공에서 완성까지 무려 40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여러 대를 이어가면서 그 어떤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호화판 건축물을 완성하려는 시민들의 집념이 만들어낸 기념비적 건축물로서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샤르트르 대성당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보속 건물을 제외하고서도 스테인드글라스가 무려 170장이나 된단다. 기증한 이들은 국왕, 사교, 봉건영주와 같은 지배자를 제하고도, 제빵업자, 고깃간, 어물전, 술가게, 모피상, 대장간, 석공, 목수 구둣방,....그리고 직공들의 조직인 길드들이 그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눈에 쉽게 들어오는 위치에 배치된 작품들은 길드가 기증한 것들이었고, 지배층의 것들은 높이 올려 져 있어서 쉽게 쳐다 볼 수 없다는 사실. 유리마다에는 기증자를 표시하는 무늬가 있어 알만한 이들은 그 유리를 기증한 것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어 있다. 이를테면 짐승을 도살하는 그림이 끼어있는 글라스는 푸줏간 조합이 기증한 것. 그러니까 기업의 선전을 의식한 배열이요 작품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유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성당 앞의 광장은 대체로 르네상스 이후에 생겨났다는 것. 그 이전에는 성당 앞까지 민가가 들어차 있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의 광장도 19세기 후반 혁명재발을 두려워한 나폴레옹 3세가 바리케이드를 치지 못하게 낡은 구역을 부수고 조성한 것.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유럽여행을 마친 후가 아니라, 우리나라 한 지방 도시를 다녀와서이다. 너무나 웅장한 교회건물들이 다투고 있어 좀스러운 마음에 걱정이 되어 그쪽 사정을 더듬어 본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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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성당에서 알게 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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