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다와 철용이 사이의 거리/임 영 천 목사
2018/08/09 14:23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1.jpg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 작가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자(愚者), 곧 바보(백치)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들을 제법 발표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1925),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1935), 그리고 최태응의 <바보 용칠이>(1939) 등이 그때에 나온 작품들이다. 이들을 일컬어 우리는 일제 시대에 나온 ‘3대 우자 소설’ 작품들이라고 불러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 중 특히 <백치 아다다>는 여주인공 아다다의, ‘돈’ 때문에 일어난 불행한 말로가 매우 극적으로 표출되어 있어서 다른 우자 소설들과 다소 구별되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주인공 아다다는 아버지가 마련해준 지참금을 갖고 시집을 가서 남편과 다정하게 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이 외지에 나가 돈을 많이 벌고 딴 여자 하나를 데리고 들어온 뒤로 아다다는 불쌍해지게 되었다. 이후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아다다는 끝내 자신이 살아갈 새 길을 선택한다. 그것은 이웃 가난한 노총각 수롱이와의 새 결합이었다. 수롱이는 전부터 아다다에게 호감을 지녔던 청년으로, 그녀가 시집에서 쫓겨난 것을 알고는 다시 그녀에게 접근했고, 한편 아다다는 돈 때문에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해 돈 없는 수롱이와 함께 살면 아무 문제가 없으리란 판단 하에 둘의 새 결합이 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둘은 그들의 마을을 떠나서 신미도란 섬으로 가서 새로이 정착하기로 한다. 신미도로 왔을 때 아다다는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무일푼인 줄 알았던 수롱이가 지금껏 머슴살이로 모아 두었던 돈을 꺼내 보이며 그 돈으로 밭을 사자고 했을 때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돈이라면 원수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그녀는 수롱이 몰래 그 돈을 꺼내 바닷물에 흩날려 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롱이는 눈이 뒤집혀 아다다를 발로 차 바닷물로 처넣어 버린다. 아다다는 결국 그 ‘돈’ 때문에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우자 소설’은 그 후에도 더러 나오는 편이다가, 올해 한만수의 <철용이를 찾습니다>(2018)란 작품의 출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소설 역시 ‘돈’의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면에서 <백치 아다다>와 어떻게든 연관되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돈’의 문제에 관한 한, 두 작품은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시대와 사회가 변화하니 ‘우자 소설’에서의 돈의 문제도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 같다.
현재 갓 회갑을 넘긴 철용이는 그가 사는 마곡리 마을에서 남을 위해 가장 충실하게 일을 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일(노동)이 그 자신에게 합당한 보수를 보장해 주지는 못했다. 그는 정신지체장애 2급의 장애인이었으므로 아예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늘 홀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언제나 값싸게 부려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의 현(現) 이장이 다른 친구와 함께 그곳 지구대에 찾아가 실종 신고를 하려고 했다. 그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안 지구대에서는 면사무소에 가서 그의 자세한 인적사항을 알아 가지고 오라 했다. 그들이 면사무소에 갔을 때 그곳의 사회복지사는 철용 씨가 그동안 장애인 수당과 기초수급권자 수당 등 월 55만원씩을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이장 일행은 이 사실의 여부를 철용이에게 직접 확인해 보려고 그의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집에 다다랐을 때 그들을 반겨준 것은 철용이가 아니라 사람이 죽어 썩는 역한 냄새뿐이었다.
그러면 철용이는 왜 죽었을까? 자연사, 자살, 타살 등 여러 답이 제시될 수 있겠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전(前) 이장이 철용이의 수당을 대신 받아 챙긴 것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혐의가 기울고 있는데, 사실이 그렇다면 아무래도 그 돈의 수령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전 이장이 직접, 혹은 누구를 사주해 철용이를 살해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처럼 우자(愚者)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는 아다다나 철용이나를 막론하고 돈을 더 추구하는 자들에 의해 속절없이 희생되기 마련인가 보다. 바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 곧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힐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 원리가 여기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다다는 순간적으로 격분한 수롱이의 우발적 범행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 같다. 그러나 철용이는 추측건대 전 이장의 계획적 모의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볼 때 아다다의 죽음과 철용이의 죽음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죽음에 있어서 우발적인 것과 계획적인 것의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두 우자들에 관한 소설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변화한 시대상과 사회상을 읽고 있다. 그만큼 시대와 사회는 무섭게 변하고 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