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49
2018/09/14 15:4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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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
3부 이제는 교회개혁과 신앙개혁이다

49. ‘사랑하라’는 말의 진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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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 말씀은 교회 입구나 측면에 부착되어 있는 간판이나 현수막에 많이 사용하는 구절이다. 기독교 신앙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단어는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기독교 신앙의 대표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성경 전체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압축하여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해 놓은 문서는 십계명이다. 그 십계명의 내용은 열 가지이지만 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두 가지다.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피상적이다.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자녀가 부모를 사랑할 수는 없다. 부모는 단지 자녀들이 부모의 말에 잘 순종하면 그것에 만족하고 그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매우 한정적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명백하게 제시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이웃 사랑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 이 말씀을 사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을 하자면,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지는 못할지라도 미워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거울삼아서 자문자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나는 가족을 포함하여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가?”. 이 질문은 우리의 생명 혹은 영생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4,15). 살인을 쉽게 할 수 없듯이 사람을 쉽게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말씀이다. 사람을 미워하게 될 때에 즉시로 죽는다면, 우리는 과연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까?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은 죽는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웃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사랑하라=대접하라
예수께서 계명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였다. 예수님 당시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약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사랑하라”는 것임을 깨우쳐 주는 말씀이다. 아무리 구약성경 지식이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구약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사랑’은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감정’이 아니고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원칙’이라는 것이다. 성도의 삶 속에서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흔들림 없이 지속적이고 변함없이 지켜져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이 마태복음 7장 12절에 나오는 황금률(Golden Rule)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 마지막 부분에도 구약성경을 의미하는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이 나온다. 이 표현은 신약성경에 두 번 나오는데 “사랑하라”는 말씀 끝에, 그리고 “대접하라” 말씀 끝에 나온다. 그러니까 구약성경 전체를 요약하면 “사랑하라” 혹은 “대접하라”는 것이고,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이라면 그 원칙은 황금의 법칙 곧 남을 “대접하라”는 것임을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남을 대접한다는 것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물론 대접하는 것의 중심에는 사랑의 동기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1)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든 행위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 마음의 동기이다. 그것이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마음속으로 나를 존중해주고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이 대접의 출발이다.
(2) 말로 다른 사람을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언어이다. 어떤 말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력을 주는 반면에 어떤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몸을 병들게 만든다. 즉 생명적 언어와 사망적 언어가 있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해 주면 기분이 좋다. 칭찬을 해주면 힘이 난다. 그렇다면 그런 대접을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늘 좋은 말을 하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을 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인정해 주고 좋아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좋아하는 것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에너지요 활력소가 된다.  
(3)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생명과 시간과 건강이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차이는 많이 있지만 누구나 재물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소유물을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대접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소유를 다른 사람에게 나눌 때에 사람은 행복감을 느끼고 보람을 느낀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그러한 본성을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의 그러한 성품을 사람에게도 주신 것이다. 사랑의 바탕은 희생이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내어 주시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을 보고 한없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4) 구원의 복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영원히 죽을 인생에게 생명의 복음을 나누고 영원히 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대접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딤후 4:2).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양심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 36). 이에 대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은 언제 자기들이 주님을 대접했느냐고 묻는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그래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황금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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