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심문관과 예수의 숨 막히는 대결-임 영 천 목사
2018/09/21 10: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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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들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인 15세기에 스페인의 한 도시(세비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였다. 날마다 수많은 이단자들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화형(분형)에 처하는 무서운 종교재판이 열리곤 하던 때였다. 이때 교회 신도들이 눈물과 믿음과 열성으로 “주여, 저희들에게 어서 내려와 주옵소서.” 하고 애원하는 소리가 컸으므로 주님은 한번 민중들에게 내려가 보려는 마음이 들었다. 대심문관인 주교의 지휘로 100여 명에 가까운 이단자들을 대거 화형에 처한 일이 있었던 바로 그 다음날 주님은 고요히 한 곳에 내려오셨다. 그곳은 이름도 악랄한 “엄한 화형의 뜰”이란 곳이었다. 신도들은 그가 주님이신 줄 알고 불가항력적인 그의 힘에 끌려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다시 기적들이 일어났다. 맹인이 눈을 뜨는가 하면, 관 속에 누워있던 어린 소녀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였다.  
호사다마라고, 때마침 교권의 상징인 대심문관이 그곳엘 지나가게 되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대뜸 주님을 잡아 가두라고 수행자에게 명령하였다. 꼼짝없이 주님은 종교재판소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날 밤 그 늙은 대심문관이 감옥 문을 열고 홀로 들어와 주님과 마주하였다. 한참 동안 주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말로 당신이 예수이시오? 예수냔 말이오.” 이렇게 심문관답게 형식적인, 다소 조소 섞인 인정신문(人定訊問)을 한 뒤, ”그런데 뭣 때문에 나를 방해하러 왔소? 당신이 나를 방해하러 왔으니까 하는 말이오.“ 하고 다짜고짜 주님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내일이면 나는 당신을 유죄 판결하고 ‘가장 악질적인 이단자’라고 말뚝에 매달아 불태워 버리겠소. 알겠소? 아마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요.“ 이렇게 모욕적이고 위협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 시작된 예수에 대한 대심문관의 심문이 장황하게 전개된다. 무어라 대답 좀 해 보라고 해도 예수는 묵묵부답이다. 15세기 현장이지만 1500년 전(1세기, 예수 생존 시대)의 상황과 다름이 없다. 예수는 여전히 침묵 일관이시다. 당시 대제사장의 무리에 의해 고난당했던 예수는 지금도 종교지도자인 대심문관에 의해 여전히 고난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심문관은 예수에게 왜 당신이 나를 훼방하러 왔느냐는 식의 힐난을 수차례 더 반복한다. 그러면서 그는 결정적으로 예수에게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당신은 우리에게 사업을 물려주었소. 당신이 우리에게 맺고 푸는 권리를 주었으니, 이젠 그 권리를 우리에게서 박탈할 수는 없을 것이요. 그런데 왜 우리를 방해하러 왔소?”
이 <대심문관>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가 그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의 일부(‘正과 反’)에 집어넣어 둔 또 하나의 작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가문의 세 형제들 중 둘째와 셋째인 이반과 알료샤 사이에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로서, 형 이반이 창작하여 동생 알료샤에게 들려준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도스토옙스키가 등장인물 이반을 내세워 하고 싶었던 말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16세기초(1517)의 직전(直前) 시기라 할 15세기의 교회 실상이 이러했다는 것이요, 또한 대심문관의 권력으로 상징되는 그때의 교권(敎權)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그가 더 하고 싶었던 말은 15~16세기 종교개혁기의 스페인을 대표로 한 유럽의 교회(가톨릭) 실상이 이러했다는 것만을 말하는 선(수준)을 뛰어넘어 작가 자신의 나라인 러시아의 당시(19세기 후반)의 기독교(정교회) 사정도 오십보백보라는 점을 함께 힘주어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오늘의 우리들의 처지에서 보면,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15세기 스페인을 포함한 서유럽이나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기독교 실상의 문제로만 국한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오늘에 와서도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기독교가 전파된 곳엔 모두 다 파급되는 현재형의 이야기요 또 교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교권을 내세워 주님을 외딴 곳에 가두려는 행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 일에 왜 방해하시오? 맺고 푸는 열쇠를 우리에게 맡기셨으면 가만히 계셔야죠. 그 이상 개입하려 한다면 당신을 가만히 놔둘 수 없소. 내가 지어놓은 내 교회를 내 아들에게 주겠다는데, 세습이니 무어니, 남의 일에 무슨 간섭이 그리 심하시오? 나도 교회법 아닌 세속법도 알고 있으니 거기에 호소해서라도 기어이 당신을 굴복시키겠소. 아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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