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신사참배 80년 회개 ‘한국교회일천만 기도대성회’의 의미
2018/10/19 11: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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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을 숭배한 범죄, ‘죄책고백’은 당연
공교단 아닌 개인들의 모임… 한국교회 대표성 가질 수 없어 아쉬움

태양신 숭배자들의 ‘성지순례’
한국교회일천만기도운동본부라는 교계 한 단체가 ‘한국교회 신사참배 80주년 회개기도대성회’를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대적으로 연다고 한다. 일본의 태양신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데라스오미가미)을 섬기는 신사참배(神社參拜)는 당시 다른 교파들이 다 일제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결행한 후에도, 지금의 대한예수교장로회인 ‘조선예수교장로회’만은 남아 반대했다. 그러나 일제의 강압에 조선예수교장로회도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1938년 9월 제27회 총회에서 “신사는 종교가 아니고 국가의식”이라며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총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쫓겨나 감옥으로 끌려가고, 끝까지 반대하던 교회는 문을 닫았다. 신사참배를 하는 교회가 ‘정통’이 되고, 반대하던 교회는 ‘이단’이 된 것이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이끈 지도자들은 ‘성지순례’(聖地巡禮)에 나섰다. 그들의 성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땅, 이스라엘이 아니라, 천조대신의 신궁(神宮)이 있는 일본이었다.
김응순 이승길 장운경 등 조선의 대표적 장로교 목사들은 1938년 오문환의 인솔로 당시 개통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다시 관부연락선으로 시모노세키에 도착해 먼저 교도의 헤이안신궁(平安神宮)을 참배하고, 어어서 도교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와 미에현에 있는 이세신궁(伊勢神宮), 나라에 있는 가시하라신궁(柵原神宮)까지 순례하고 돌아왔다. 그후 그들 이외에도 소위 지도급 목사들이 일본신사에 수없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신사참배 결의는 결코 천조대신의 신사에 대한 단순한 참배가 아니었다. 한국기독교를 철저히 일본의 태양신을 섬기는 요상한 우상숭배 집단으로 바꾸려는 일제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후 그들은 경신숭조(敬神崇祖)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세우고,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일본정신에 기초한 일본적 기독교를 수립하고자 했다. 한국기독교는 철저한 일제의 어용교회가 되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1945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사라지고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탈바꿈 하고 말았다. .

 독일교회와는 너무도 다른 한국교회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교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독일교회의 약 80%에 이르는 ‘독일기독교도’(DC)는 나치의 어용교회였다. 나치를 반대하던 일명 ‘고백교회’는 불과 10%도 채되지 않았다. 고백교회는 1934년 5월 발표된 ‘바르멘선언’을 충실히 따르는 교회였다. 바르멘선언은 “우리는 마치 교회가 인간을 스스로 높이면서, 주님의 말씀과 사역을 인간들이 임의로 선택한 어떤 욕망, 목적 및 계획에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것을 거부한다”며, 나치의 협력 요구를 거부했다. 당연히 그 지도자들은 감옥에 갇치거나 사형당했다. 여기에는 이르베르츠 야코비, 니젤, 이반트, 아스므센, 힐데브란트, 헬트, 칼 바르트, 니뮐러, 본훼퍼 목사 등이 참가했다.
그러나 독일교회는 전쟁이 끝난 1945년 10월 ‘슈투트가르트 죄책고백’을 통해, 당시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나치의 어용교회인 독일기독교도를 해산하고, 그 앞잡이들은 모두 교회에서 좇아냈으며, 소수의 저항집단이었던 고백교회가 그 정통성을 이어갔다. 나치의 어용교회를 거부한 그들이 주축이 되어 EKD를 창립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독일복음주의교회’(EKD)이다.
오늘의 한국장로교가 300여 개에 이르는 교단으로 분열하는 등 이처럼 추악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비의 죄를 삼사대에 이르게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1945년 8월 15일 느닷없는 해방이 되자, 한국교회 신사참배 지도자들은 입을 싹딱고 ‘회개’를 요구하는 반대파를 향해 “우리도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며 뻔뻔스러운 변명으로 일관했다. 교단총회는 제27회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했을뿐, 회개는 없었다.
한국교회도 해방 이후 신사참배 주도자들을 모두 교회에서 좇아내고 신앙적 양심이 있는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전혀 새롭게 출발했어야 했다. 그러나 노회든, 총회든 신사참배를 주도한 자들끼리 똘똘 뭉쳐 감쌌다. 결국은 분열이었다.
장로교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감옥살이를 한 목사들이 중심된 ‘고신’의 분열 이후, 마치 봇물 터지듯이 300여 개의 교단으로 나뉘었다. 이젠 교단분열을 아무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양심이 화인(火印)을 맞아 마비된 것이다. 세상에 이런 기독교는 한국 외에 어디에도 없다.

신사참배 지도자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잘먹고 잘산다
한국기독교를 일제의 어용교회로 전락시키고, 태양신을 숭배하는데 앞장섰던 신사참배 지도자들은 본인들 뿐 아니라, 그 자녀들 또한 일본과 영국, 미국 등지로 나가 유학하고 돌아와 대학이나 교회에서 자리를 잡았다. 해방후 한국교회는 그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80년이 지난 이젠 그들의 손자와 증손들이 그 덕을 보고 산다. 부산의 한 목사는 신사참배에 앞장선 댓가로 일본 총독부 학무국으로부터 10여 개의 학교를 인가받아 학원재벌이 되었다. 지금은 그의 후손들이 그것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신사참배 60년이 되던 2008년 9월에 이르러서야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모인 제93회 총회에서 합동, 통합, 합신, 기장의 지도자들이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회개 기도를 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의 신사참배 문제는 아직도 살아 있다. 지금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이유 또한 태양신에 굴복한 한국교회의 신사참배죄에 대한 죄벌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기독교가 그 덩치에 비해 허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 한번도 신사참배죄에 대해 진정성을 담은 죄책고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교계의 일부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신사참배 80주년 회개 기도성회를 갖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쉬움도 있다. 한국교회의 신사참배는 교단이라는 공교회의 범죄이다. 죄를 지은 자가 회개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공교단이 아니라 개인들이 모여 회개하는 것이 과연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강춘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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