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자화상

박 정 현

내 귀는 팔랑개비

손 내미는 말마다 믿고
의심도 거절도 모른다
영글지 못해 내 것 주고
달란 소리 한번 못하고 입 봉한 채
가슴앓이하며 미워도 못한
못난이다

꿀 바른 뱀의 혀에 녹아
쉬파리 입에 붉은 인주 찍고 집 날려
쉰밥 먹었다

말씀에 무릎 꿇어
배신과 후회의 가시 목에 넘기고
쭈욱 발 뻗어 편한 잠잤다

주님 향기로
들꽃 꿈꾸며
내 귀는 아침 나팔꽃

예술가들은 종종 그의 작품 속에 자화상을 그려 놓기도 하고 혹은 자전적 소설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시인의 자아 성찰과 내면의 세계를 형상화 시켜 암유적 자화상으로 감명을 선사 한다. 우리 현대시사에서 윤동주의 자화상을 대표적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본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다.                  中略-
암울하던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고뇌와 시인의 아픔이 그려진 자화상이다.
박정현의 자화상은 현실과 직면하며 살아가는 보편적 정서를 순수하게 직설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짧은 시 한편에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가림 없이 표출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복음서를 묵상한다면 시인의 모습은  어리석음 조차 아름답게 다가 온다.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 까지도 가지게 하며”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첫 행에서 내 귀는 팔랑개비 라고 고백하지만 말씀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참 신앙인의 삶의 궤적을 엿보게 된다. 고뇌와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의인의 길은 멀기만 하지만 깊이 묵상하며 간교한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쉼 없이 간구하는 참 나약한 피조물이 아닐까? 창조주께서 섭리하신 그대로 시인의 形質이 빚어져 하늘의 것을 향하는 그 지향점에 자화상이 그려져 있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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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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