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성령
2019/06/20 11: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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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의 그리스도의 교회 역사는 두 가지 힘에 의해 이끌려왔다. 하나는 성령의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의 사역이다. 그 예로, 초대교회는 성령의 사역이, 종교개혁 시대에는 성경의 사역이 표면에 강하게 나타났다. 어느 한 쪽이 약화되면 다른 한 쪽이 표면에 나타나 교회를 이끄는 상승작용을 한다. 그리고 교권주의가 교회를 강력히 통치할 땐 성령도, 성경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채 잠복했다. 중세 가톨릭 시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20세기 초, 현대교회에 성령의 사역이 강력히 나타난 것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고등비평으로 인하여 성경의 권위가 심각하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가 회복되면 성령의 사역은 표면에 크게 드러나지 않고, 성도 각 개인의 심령에 내주(內住)함으로 역사하신다.
◇현대교회의 성령운동은 사도행전 2장의 성령운동이나, 고린도교회의 성령운동과 달리, 은사주의 현상에 치우친 면이 강하다. 그로인해 기독교의 계시신앙이 신비체험이나 은사체험에 매몰되고 있다. 그래서 마치 방언, 예언, 환상, 입신, 엑스타시 등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특히 오순절 파는 아예 방언을 할 줄 모르면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방언은사를 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방언과 고린도교회 방언 그리고 현대교회의 방언이 각기 다르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사람을 향해 한 것이지만, 고린도교회 방언은 하나님을 향해 한 것이다. 또 사도행전 방언은 듣는 사람이 각기 자기 말로 들었으나, 고린도교회 방언은 통역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방언은 개인의 신앙생활의 향상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성령운동의 현상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하고 성경만을 강조해야 하는가, 또 성경만을 강조하다 보면 율법주의이고, 바리새적인 신앙형태로 굳어질 우려가 있다고 해서 성령운동의 현상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은 보편적 신앙생활에 있어서 둘 다 옳은 태도가 아니다.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성령의 조명(照明)을 통하여 성경을 깊이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는 성경에 나타나 있다. 그래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한다. 그리고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다. 따라서 성경을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가르침이 절대적이다. 참된 설교자와 신비주의자의 차이는 성경보다 성령을 앞세우는 사람의 차이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기본은 성경이 규범이 되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에는 피조세계의 조명과 창조와 섭리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진리가 보다 잘 보존되고 전파되며 육체의 타락과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하여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하며 위로하시기 위함이다. 이와같은 이유로 진리를 온전히 기록한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에게 지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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