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이 국민통합보다 중요한가? -심 만 섭 목사
2019/06/21 11:2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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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현충원에서 있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의 김원봉에 대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의 추념사를 보면, 앞부분에서는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습니다.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입니다’라고 운을 뗀다.
그리고 그 뒤에 가서 ‘임시정부는 1941년 2월 10일 광복군을 앞 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 했습니다’라고 전개하고, 한 문단 띄우고 나서,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라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를 삼는 쪽은 월북하여 북한 내각의 국가검열상(우리나라의 검찰총장격)과 6.25전쟁 중에 노동상(전쟁 중의 물자와 무기를 만들고 조달하는 역할)을 지낸 인물이 어떻게 ‘국군의 뿌리’가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반발하는 쪽에서는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는 것이지,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라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한다.
그러나 추념사를 읽고, 그 앞뒤 문맥을 연결하여 살펴보면, 김원봉과 국군의 뿌리라는 말이 연결점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듯하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여도, 현충원에 잠든 분들의 상당수가 6.25때 북한의 남침으로 희생된 분들이 상당수가 묻혀 있는 곳에서, 북한의 남침 전쟁에 상당히 기여한 인물을 추켜세우는 것은, 분위기상/예의상 맞지 않는다고 보인다. 현충일이 만들어진 것도 1950년 북한에 의한 무력침략으로 인한 엄청난 인명 피해와, 그때의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1956년 제정된 것이다.
사실 문 대통령의 김원봉에 대한 찬사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당시 야당 대표 시절, 페이스북을 통해,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2015년 개봉된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고서 SNS를 통해 피력했다고 한다.
김원봉은 1898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하였고, 1919년 중국에서 의열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일제 수탈기관 파괴, 요인 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벌인 인물이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조선의용대라는 군사조직을 만들었고,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하였고, 1944년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지냈고, 광복 후 귀국하였다.
그리고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북한에서 장관급으로 승승장구하고, 6.25전쟁 중에 김일성으로부터 ‘조국 해방전쟁(6.25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며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으나, 1958년 연안파가 숙청될 때, 같이 숙청되었다.
그의 월북 원인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미국의 보고서에 의하면, 김원봉은 스스로 좌파로 인식하고 월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원봉을 끄집어내려는 이유는 뭔가?
대통령의 이런 인식 때문인가? 올 2월 국가보훈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보훈혁신위’에서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敍勳)을 제안하였다. 또 최근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을 묻는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42.6%가 찬성하고, 39.9%가 반대한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 민간단체, 정부, 광복회, 군사편찬연구소 등도 김원봉에 대한 서훈을 위한 토론회, 학술토론회, 서명운동, 역사에 기록하기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발언과 의식은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대통령의 김원봉에 대한 호의적 발언과 좌파적 인식은 우리 체제의 현실을 보게 한다. 문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도 ‘빨갱이’라는 말을 꺼내서, 이 말이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이런 서슴없는 발언은 국가 공동운명체의 엄청난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원봉이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기여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가 자유 대한민국을 세우는데 기여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히려 독립된 대한민국에 비극과 혼란을 준 것은 틀림이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 기초를 공고히 하는데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을 규정한 ‘상훈법’이 있는데, 이에 맞지 않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대통령의 역사전쟁과 국민통합, 무엇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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