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행복론 - 108
2019/07/04 15: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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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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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사무엘상』4:3-4)
엘리 제사장 때 이스라엘이 블레셋(오늘날의 팔레스타인)과 싸울 때의 일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사 “사천 명 가량”이 죽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법궤를 가져다가 진중에 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하고 만다.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린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다”(『사무엘상』4:10-11). 그들은 여호와의 법궤를 우상처럼 섬겼고, 하나님을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려 하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을 마치 자신들의 종처럼 다루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종처럼 다루어질 분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시한 결과는 처절한 패배로 끝날 뿐만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까치 처참하게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을 뿐만 아니라, 엘리도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놀라 의자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아이 이름을 ‘이가봇’(“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의미)이라 이름 짓고는 세상을 떠났다.
이와 같은 사실이 다만 과거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그 실상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을 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요즈음 일부 교계 지도자들의 반목과 질시, 성직자들의 입바른 소리만 하고 구체적인 실천이 없는 설교, 교인들의 일탈된 행동 등은 바로 블레셋 군대 앞에 선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어떤 이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성경책만 가지고 있으면 해악이 미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현대의 교인들은 여호와의 법궤에 담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져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것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때 주님이 박사학위를 받게 해 주셨으니, 대학 교수직을 가지는 것도 주님이 인도해 주시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것이 여호와의 법궤를 우상처럼 섬기는 매너리즘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노력하면 이루어질 것 같던 소망이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개인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대학 교수직’을 우상화한 데서 온 필연의 결과였다. 이 때문에 나는 수많은 세월 동안 좌절의 고배를 마시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너무 한 곳에만 경직되어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상대방의 부조리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온 나에게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하는 비등점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이 우상화시켰던 ‘여호와의 법궤’를 반성하며, 나의 능력에 대하여 객관적인 검증을 해 나갔다. 나 자신 학문 연구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는가, 인간 관계에 소홀한 점이 없었는가, 너무 절망에만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가 등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하였다. 그러자 나에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가족과 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났다. 나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서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그들을 위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에게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였고, 딸네 집에서는 가사 노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아들의 취업을 위해서 진심어린 기도를 하였다.  그러자 대화가 없던 가정에 대화와 웃음이 생겨났고, 가족간에 신뢰가 형성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의 눈의 티끌은 보고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그러하고, 정치인들이 그러하며, 조직 내에서의 개인과 개인이 그러하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에 빠져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내 탓이오’라고 외치며 내 안의 들보를 걷어내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할 때 우리 사회에 더욱더 건강한 인간 관계가 형성되고,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간에 살 맛 나는 인간미가 살아날 것이다. 나를 긍정적으로 개조할 때에 내가 비판하던 상대도 변화될 것이다. 이 순간 내가 교회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주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실 일을 잊지 않았는지 점검하여 볼 일이다. 내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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