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기독교
2019/07/05 11: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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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공동체를 ‘그리스도교’라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교를 한자 문화권에서 번안한 말이 ‘지뚜교’(基督敎)이다. ‘지뚜’는 그리스도를 중국어로 번안한 ‘지리스뚜’(基利斯督, 기리사독)에서 온 것이다. 이것을 첫글자와 끝글자를 따서 한국어로 표현한 말이 ‘기독교’(基督敎)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기독교’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와 ‘복음’이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를 엄격히 구분한다면 기독교는 종교이고, 복음은 그 종교가 안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계란의 껍질과 그 안에 담겨 있는 노란자위, 흰자위, 씨눈, 알끈과 같은 관계이다. 계란은 껍질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용물에 생명이 있다. 껍질은 그 안에 있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생명은 복음에 있지만, 이 복음을 보호하는 것은 기독교이다.
그러나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그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예로는 복음과 성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킨 십자군 전쟁, 복음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설치된 이단재판소와 교황권 등이 그런 것이다. 그로인해 복음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기독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신생(新生)의 체험을 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신생의 체험없이 복음은 믿지 않고 기독교라는 종교만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은 그의 삶과 행위에서 어느 정도 드러난다. 이것을 사람이 확실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성령님은 다 아신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문제임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세가지 방법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다분히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영역에 머물 수 있다.
말씀에 대한 순종,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 이웃에 대한 섬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용서, 사회적 구조악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항거, 이런 것들을 실천하는 사람이 곧 복음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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