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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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생전 60여년 동안 돌보다 세상을 떠난 고 최봉인 장로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 최봉인 장로 선교사업회가 지난 812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에서 한국교회 양화진 역사 바로 세우기공청회를 열고, 한국교회가 양화진의 진실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최봉인 장로 선교사업회’(이하 선교사업회)는 한국교회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직접 관리했던 고 최 장로의 역사적 업적과 그의 재산 기여를 재조명함으로, 한국교회에 잊혀진 역사의 숨은 영웅을 수면 위로 이끌어 내기 위한 단체다. 특히 동 선교사업회는 현 100주년선교기념관 터가 고 최 장로 소유의 땅이었음을 주장하며, 100주년기념재단에 그에 대한 인정과 응당한 소개를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선교사업회의 주장에 대해 기념재단은 전혀 근거없다,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선교기념관 터가 최 장로의 소유였다는 것은 유족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이를 사실로 확정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 장로의 유족들은 국가 외교문서인 외아문 일기등을 근거로 선교관이 최 장로의 소유였음을 확신하고 있다. 현재는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며, 자칫 법적 소송으로도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기념재단측 불참, ‘반쪽 공청회아쉬움

고 최봉인 장로의 손자며느리인 최지연 원장(샛별한국문화원, 시애틀베다니교회)은 이날 공청회가 법적 소송으로 가지 않기 위한 선교사업회의 노력이자, 방편임을 강조했다. 가뜩이나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 한국 선교의 상징인 양화진이 또다시 분쟁에 휘말리는 모습은 결코 좋을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만큼 최 원장은 이날 공청회에서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을 향해 양화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줄 것을 전심으로 호소했다. 그저 양화진의 바른 역사를 세우고, 선교관이 이름 그대로 선교사들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는 것이 선교사업회의 바램이라고 전했다.

 

허나 이날 공청회에는 정작 100주년기념재단측이 불참하며 반쪽에 그치고 말았다. 당초 고 최 장로의 업적과 재산 기여 등에 대해 양측의 첨예한 주장이 맞붙으며,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예상됐던 것과는 다르게 기념재단측이 불참하며, 공청회는 선교사업회의 일방적 호소에 머물렀다.

 

기념재단측은 먼저 선교사업회측에 보낸 공문을 통해 공청회 개최에 동의한 바 없다면서 공청회가 자신들과 관련이 없음을 전제했다.

 

선교사 묘역과 관련해서는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명백히 100주년기념재단의 소유이며, 이는 어떠한 이유로도 변경될 수 없다면서 이를 음해하는 외부의 시도에 대해 적극 대응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고 최 장로의 후손이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수년 전부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으나 본 재단은 이에 대응할 이유와 가치를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석자들의 아쉬움은 짙었다. 무엇보다 선교사업회측은 이날 공청회에 선교관이 고 최 장로의 소유였다는 여러 증거들을 갖고 나온 만큼, 양측이 현장에서 이에 대한 진위를 가리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 않았는가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사업회측 증거 확실" 주장

이날 선교사업회측은 그 증거로 최봉인 장로가 18961031일에 발행된 독립신문 기사 중 이곳은 개인 자산이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을 위해 제공된 땅이다라는 보도를 보고, 5개 공사 대표인 러시아 공사 위베르에게 자신이 산 가로 70, 세로 100(200) 땅에 대한 소유를 문서로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자, 위베르가 외부대신 이완용에게, 이완용이 내무대신 이재순에게, 이재순이 관할청 홍현택에게, 홍현택이 이재순, 이재순이 이완용, 이완용이 위베르에게 전달한 문서와 답장 등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국가 외교 문서인 궁내부 래안 외아문 일기를 들었다.

  

이들은 또 백주년기념사업회에서 이러한 증거에 대한 반박공문을 보내온 것과 관련해서, 재반박의 답변도 내놓았다.

 

그 중 감검관이 산 땅은 100자에 70자가 가까운 약간 세모난 땅이라 했지만, 관할청장 홍현택이 조사한 바로는 감검관이 산 것은 사실이나 둘레가 불과 수십보 밖에 되지 않아 상반된 이야기라는 백주년기념사업회의 주장에 대해선 외국인들이 척간하는 자와 관할청에서 척간하는 보의 차이를 서로가 몰랐다. 관할청 나졸들은 국가의 명이라 수천 평이나 수만 평이 되는 것으로 느꼈는지 수십보가 너무 작았다면서, “그러나 100자에 70자는 약 200평이고, 1보가 182센티이니, 둘레가 50보이면 역시 200평으로 같은 크기라고 반박했다.

 

“‘앞이 국유지라서라는 문장의 귀결이 애매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누군가의 대지나 전답이 아니라 국유지라 뭐라고 문장을 정리하기 어렵다는 뜻이라며, “당시는 카메라나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기에 글로 정리, 정확하게 문장의 귀결이 어렵다는 설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문서마다 감검관이 샀다는 것은 승인한다고 했고, 원문에 매득이라고 썼다, “사들인 것은 사실이라고 문서마다 기록되어 있다. 문서에 내부대신 이재순 직인이 찍혀 있다고 부연했다.

 

이들은 또 감검관이 최봉인이라고 이름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마포구 합정동 14413개의 필지 중 유일한 대지로 그 땅에는 최봉인 장로와 후손들만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산 기록이 없다면서, “양화진 묘지 관리는 1950624일까지 최봉인 장로 외에 다른 사람이 없었고, 60년 동안 하인, 소작인들과 관리했으며 일제하 선교사들이 모두 쫒겨 간 이후에도 500개가 넘는 묘를 관리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최봉인 장로가 묘지에 살면서 관리하며 매달 돈을 받았기에 주인이 아닌 묘지기라는 주장과 관련해선 감검관 최봉인 장로는 죽을 때까지 60년 동안 그 땅에 살았다. 1984년 백주년이 들어와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집을 허물고, 선교관을 지을 때까지 95년 동안 그 땅에 산 사람이 최봉인 장로와 후손 밖에 없다. 다른 감검관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기념재단을 향해 최봉인 장로에 대한 역사를 바로 써 줄 것 선교관 2층 예배당의 명칭을 최봉인 장로 기념 예배당으로 해줄 것 최봉인 장로 후손들이 선교를 위한 모든 행사에 선교관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줄 것 등의 요구사항을 다시 한 번 밝혔다.

 

한편, 선교사업회측은 공청회까지 열어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코자 노력했는데, 이렇게 계속적으로 협력치 않는다면, 결국 법적 소송도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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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선교관 터 최봉인 장로 소유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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