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행복론 - 111
2019/08/22 14:4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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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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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천지 창조의 비밀이나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필자는 잘 모르겠다. 다만 복음을 기술한 집필가들의 기록을 신뢰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만약에 그들의 기록이 허구라면 나는 과감하게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본성 뿐만 아니라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본성에는 분명히 실재-진리라고 가정된 세계-를 이해할 만한 안목이 내장되어 있었다. 인간에게 사랑·미움·겸손·교만·배려·질투·의·불의·선·악·미·추·진실·거짓 등을 만드신 이는 절대자이지, 어떠한 생물이나 광물일 수가 없다. 나는 요즘 일상 생활을 하면서 신기하고도 오묘하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미력하나마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축복이다.
그분이 나에게 주신 축복은, 내가 대학 교수가 되어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다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세계 곳곳에 명강연을 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성령이 나로 하여금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게 하셨다. 집안 일을 하면서 외손자를 돌보고 속회의 속도원들을 배려하는 데에서 한없는 기쁨의 심정을 느끼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본성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축복을 미시건주의 한 마을 앤아버에서 감지하였다. 250여 명이 모이는 작은 교회였는데, 그 교회의 속장인 천집사가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카톡방에 초대하고는 그곳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있는 속회 주관 주일 점심 접대 시간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교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부족한 것이 없냐면서 양푼에 담은 볶음밥을 조금씩 더 나누어 주었으며, 주일 오후에 있는 속회 모임 시간에는 커피 전문점에서 속도원들에게 다과를 대접하면서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고, 금요 예배 전의 토론 시간에는 속도원들의 간증을 겸손하게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귀국할 때에는 직접 숙소에 찾아와 케이크와 과일들을 내놓으면서 다음에는 6개월 관광 비자를 받아 더 오래 머물다 가라는 말을 하며 아쉬워하였다. 알고 보니 그는 미시건 주가 아닌 오하이오 주에서 대학 교수 생활을 하면서도 주일에는 고속 도로를 두 시간 이상 주행하면서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의 배려가 그 교회의 박목사의 섬김과 배려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목사는 내가 미국 교통 법규를 잘 몰라 운전하기를 곤란해 하자 직접 나를 숙소에까지 라이딩해 주었으며, 미국에 잠깐 들른 교인들을 위한 초청 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주었고, 나에게 식사를 대접할 기회를 달라며 친구처럼 배려하였다. 그는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교인들을 일일이 섬기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성직자라 해서 교인들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섬김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배우려 하였다. 그리고 내가 귀국할 때에는 내가 다시 그곳에 올 것이므로 “송별”이란 말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내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마음이었다. 그들의 섬김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난한 자·병든 자·소외된 자를 배려하신 주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의 과정을 겪은 후에도 자신을 배반하고 떠난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사신 모습을 직접 보여 주셨다. 이를 목격한 제자들은 오순절날 성령의 은혜를 받고 로마와 아프리카와 인도에까지 지경을 넓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또한 사도들은 음식·결혼 등의 유대 율법을 넘어서서 성령이 인도하심과 부활을 증거하며, 귀족과 노예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게 음식을 나누고 섬기는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 정권이 다신교와 황제 숭배 등을 주장하자 강한 저항을 하여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아 이스라엘을 떠나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교 집회를 가졌다. 이에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와 로마에 이르기까지 지경을 넓혀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이 임재하심과 재림 등을 전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중시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대교와는 구별된,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였다. 유대교와의 큰 갈등 가운데 하나는 음식 문화였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시중에 이방신에게 제사하고 남은 음식들이 뒷거래 되는 것이 많다며, 유대교 율법에 따른 음식만을 섭취해야 하며 이방인과 함께 식사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은 고기 등이 이방신 제사에 사용된 것인가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A.D 49년에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모인 가운데 예루살렘 회의가 열렸다. 안디옥 교회 등에서 이와 같은 갈등을 직접 목격한 바울은 율법보다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를 것을 주장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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