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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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13:12).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있었던 시절에도 소돔과 고모라성은 타락한 곳이었습니다(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3:13). 그래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유할 곳을 택할 때도 소돔을 피하여갔습니다(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3:11).

 

롯은 소돔을 택한 것이 아니라 소돔과 경계지역이었던 요단 온 들을 택하였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는 소돔에서 멀리 떠나지 못하였기에 자신도 모르는 새 소돔까지 이르렀고 나중에는 소돔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신자들이 거룩함을 향하여 점점 마음 쓰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 세상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워지게 됩니다. 조금씩, 조금씩 유행과 풍속 습관을 따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그 땐 나오기 힘든 상태로 빠져듭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왜 그렇게 하였을까요?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쌔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22:54).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지 아니하고 멀찍이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그 때가 추운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18:18).

그들과 함께 쬐면서 예수님께 대한 여러 왜곡된 말들을 들었을 것입니다. 불평불만을 품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그만 물들고 만 것입니다. 또한 험악하고 살기등등한 분위기에 그만 압도당하고 만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과 멀어지면 세상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롯이 하나님을 잘 믿는 아브라함을 멀리하면서부터 소돔과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은 안 된다.”라고 말했을 때 롯은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알아서 할게요.”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한 발 한 발 소돔 땅에 접근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문에 앉아 재판할만큼 유지까지 됐습니다.

 

무너지는 것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맹독성은 사람들이 피하지만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사람들이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신자들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선이 있어야 합니다.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합니다. 그 선은 성경에 합당한 선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면 롯이 자신도 모르는 새 소돔 땅에 들어가 살았던 것처럼 신자들도 무감각해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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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신자들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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