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과 국권 간의 긴장과 갈등/임 영 천 목사
2019/11/18 14: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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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고 성급한 장군 출신인 테오도시우스가 4세기말(379년)에 동(東)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수년 뒤인 387년에 황제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한 폭동 사건이 터졌다. 이는 제국이 세금을 너무 무겁게 올린 데 대한 시민들의 불만에서 터진 것이었다. 중과세에 항거해 일어난 안디옥(안티오크)의 폭도들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와 황후의 동상을 넘어뜨리고 그것들을 시내 거리로 끌고 다니면서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황제의 보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안디옥의 감독이 진사단(陳謝團)을 구성하여 직접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황궁으로 찾아가 황제의 분노를 달래기에 최선을 다했다. 이때 1년 전(386)부터 안디옥의 장로로 안수를 받고 열심히 설교를 하고 있었던 크리소스토무스가 나서서 유창한 설교를 하였으니,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민들로 하여금 사람(황제)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갈파해 시민들과 황제 측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 몫을 담당하였다. 결국 황제는 안디옥의 장로 크리소스토무스의 간절하고도 강렬한 설복 때문에 폭도들에 대한 보복을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1년 뒤(388)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서(西)로마의 찬탈자 막시무스를 아퀼레이아 전투에서 패퇴시키고 이어서 그를 처형함으로써 동서 통일 로마제국의 통합 황제가 되었다. 경사라면 경사였다. 그러나 바로 그해(388)에 다른 한 종교적 충돌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황제의 처지를 다시 난처하게 만들었다. 제국의 동쪽 끝,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변의 한 도시 칼리니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열성이 극심했던 그곳의 감독이 열광적인 신도들과 함께 어느 이단자들의 집회소와 유대인의 회당을 부수고 불살라 버린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지방의 평화를 교란시킨 죄를 응징하는 의미로 그 감독을 문책하고 또 가해자의 부담으로 그 파괴, 소실된 곳을 재건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374년부터 밀라노의 감독으로 재직해온 암브로시우스가 황제에게 그 명령을 거두어들일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교회 측이 유대인의 회당을 재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적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일이 되므로 그 명령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큰 영향력을 의식한 황제는 이번에도 앞서 내렸던 그 명령을 철회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390)에 또 하나의 큰 사건이 터졌다. 마케도니아의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유혈 폭동이 일어나 황제의 측근(주둔군 사령관)인 장교 한 사람이 살해된 사건이었다. 그 내막은 이러했다. 데살로니가에 유명한 전차 경주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황제의 장교에게 체포당할 만한 위법의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경기 날짜가 다가오자 사람들은 그 전차 경주자의 출전 모습을 보기 위하여, 성급하게도 결국 그 장교를 살해해 버렸다.
이에 화가 난 황제는 “좋아. 어디 너희들끼리 실컷 경기를 해 보라지.”라고 심술궂게 응수하였다. 감추어진 속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원형경기장 안으로 황제의 무서운 음모를 모르는 7천여 명의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군인들도 따라 들어갔다. 그 경기장이 관중들로 꽉 차자 군인들은 문을 걸어 잠근 뒤 무려 세 시간 동안 그 경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을 남김없이 학살하였다. 7천여 명의 관객들이 모두 시체로 변해 버렸다.
지난번 안디옥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기(황제)의 동상을 파괴했던 불쾌한 기억을 지니고 있었던 황제는 이번 자기의 측근 장교를 살해한 일에 대해서는 본때를 보여주기로 작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 감독은 황제의 이 만행을 도저히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황제를 파문시킨다는 결의를 하고 그에게 회개를 촉구해 보았다. 그러나 별 반응이 없자 감독은 참회의 증거를 보일 때까지 교회에 결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황제에게 분명히 일러두었다.
결국 견딜 수 없게 된 황제는 홧김에 일을 처리하는 일이 없도록 누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40일이 경과하기 전에는 절대로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야만 하였다. 또한 황제는 모든 공중이 보는 앞에서 교회 바닥에 누워 손발을 하늘로 뻗고서 하나님과 교인들에게 죄의 용서를 호소했다. 이런 통회자복이 있은 후 황제는 교회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암브로시우스 감독은 교회의,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주창하고, 교회의 교권을 국가의 국권으로부터 독립시키는 데 굳건한 토대를 세운 성직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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