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다윗 암논의 강간 사건 / (삼하13장) ①
2020/02/17 09:4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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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약점 많고 흠 많은 오늘날 아버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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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어느 인기 방송 연예인이 불안 장애로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한다고 했다. 그의 소속사는 보도 자료를 통해 “그가 오래 전부터 앓아 왔던 불안 장애가 최근 심각해지면서 방송을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제작진과 소속사 및 방송 동료들과 상의 끝에 휴식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병적인 긴장감을 얘기하며 “매주 이런 느낌이 있지 않나. 협심증이 올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무섭다. 시청자분들은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평소에는 인자하시지만 가끔 때로는 무섭고, 그래서 긴장을 한다.”고 말했다.
방송활동에서 시청자를 아버지같이 느끼며 아버지 같이 무섭게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긴장을 느끼는 그 뿌리에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해 주고 품어 주며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아버지가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아버지는 아들의 생업인 방송 활동을 중단할 만큼 정서적으로 중대한 영향력을 주는 존재이다. 그래서 C.S 루이스(Lewis)는 ‘남성의 포기’에서 “아버지 노릇이 우주의 핵심”이라고 언급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이 세상 모든 지혜의 근원이다. 존재의 가장 근본은 아버지노릇을 잘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는 힘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본 글에서는 사무엘하 13장에서 18장에 걸쳐 등장하는 아버지 다윗 왕에 대해 살펴 볼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거론된 하나님의 종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된 모습은 오늘 우리의 아버지 모습처럼 미숙한 부분을 조금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예표이지만 다윗은 많은 약점을 지녔고 흠이 많고 문제가 많은 인물이다.
암논의 다말 강간 사건 (삼하 13장)
다윗의 딸 다말은 많은 남자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에게는 배다른 오라버니인 암논이 있었다. 암논은 왕위 계승 서열 첫 번째인 다윗의 장자이다. 다윗의 장자인 암논은 언젠가는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어 있었다. 다윗은 암논이 맏아들이기에 무척 사랑하였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암논이 아픈 척하면서 누워있을 때 아버지 다윗이 병문안을 갔다.
그때 암논이 “아버지여!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라고 요청했다. 다윗은 즉시 사람을 다말에게 보내어 암논을 시중들게 했다(삼하 13:6).
이에 다말도  아버지의 지시에 순종하여 즉시 배다른 오라버니 암논에게 가서 시중을 들었다. 이렇게 아버지 다윗은 아들 암논의 병문안 요청을 즉시 실행하는 데서 아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준다. 암논의 병은 배다른 여동생 다말에 대한 상사병이었다(삼하13:2).
전후 문맥을 보면 암논이 다말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단순한 성적 욕망이었다. 욕망에 시달린 암논은 급기야 식욕을 잃고 여위고 창백해져 갔다. 암논의 창백한 낯빛과 줄어든 체중, 우울한 분위기는 곧 사촌이요 친구였던 요나답의 눈에 뛰었다. 요나답이 암논에게 물었다.
“형님, 나날이 안색이 수척해지는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나의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내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오.”
요나답은 아주 교활한 인물이었다. 그는 암논이 다말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사악한 계략을 제안한다. 요나납의 제안에 따라 암논은 병든 체 하다가 아버지의 문병을 받는다.
아버지 다윗의 명을 받은 다말은 암논이 병상에 누워 그가 보는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그릇에 담아 오빠에게 갖다 준다. 그때 암논은 주위 사람들을 물러치고 다말에게 “내가 몸이 불편하니 가까이 와서 손수 나에게 먹여 다오!” 라고 말한다. 그녀가 침대 가까이 왔을 때 소리 내어 말했다.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삼 하 13:11).
그러나 배다른 오라버니에게 성적인 쾌락에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암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열정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며 필사적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 했다. 그러나 암논은 그녀를 쓰러뜨려 억지로 욕망을 충족시켰다. 욕망을 채운 암논은 심경의 변화를 가져왔다.  “암논이 다말을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하여졌다”(삼하 13:15).
다말은 자기의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에 얹고 크게 울부짖으며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압살롬은 동복 남매였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심히 노한다(삼하 13:21).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암논의 행위에 대해 책망을 하거나 수치를 당한 다말을 불러 위로한다든지 하여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성경은 이렇게 묵인된 상태에서 2년을 보내었다고 언급한다(삼하 13:23).

다윗은 왜 암논의 강간 사건을 외면했는가?
암논이 다말을 강간하고 내버린 사건에 대해 아버지 다윗은 아무런 수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다윗의 자식들은 어릴 적에는 공공연한 악에 물들어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제어하시는 손길이 떠나간 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사악한 죄를 지은 후였다. 부모가 의의 길을 저버린다면 하나님이 그들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과 같은 악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징계하시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 자녀들은 자기 부모들의 악한 행실을 구실삼아 자기들의 악행을 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밧세바를 간음한 다윗에게 나단을 통해 주셨던 무서운 경고를 행하시는 방식은 훈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그 경고는 다윗의 왕궁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전소되거나 큰 폭풍으로 철저히 파괴되는 식으로 이행되지 않았다. 또 그것은 그의 아들들 중 하나가 번개에 맞아 죽거나, 다른 아들은 지진에 의해 땅속으로 삼켜지는 식의 천벌이 실행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역할에서 가르치고 훈계하는 역할은 중요한 책임이다.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을 적절하게 훈육할 것을 요구하신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다윗의 자녀에 대한 훈계를 간과한 모습은 마치 엘리 제사장이 실수한 모습과도 같다. 엘리는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다(삼상 3:13). “응석받이로 자란 자녀들이 그들의 경건한 부모에게 시련거리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 부모들은 어리석은 애정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무시한다.”
아버지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자신의 씨를 통해 나온 이 들이 성장하며 발전할 수 있도록 영양분과 자원을 제공해 주는 존재이다. 자녀를 가르치는 일은 남자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남자는 가르치는 일에 적합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래서 남성들은 본성적으로 가르치고 지시하기를 좋아한다. 아버지는 가르치는 본능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남자는 누구나 가르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아버지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 남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식과 명철을 얻을 때 정직과 성실로 가정을 이끌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치는 모습은 성경에서도 보여 준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언 2:6).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잠언 4:5).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잠언 3:1~13).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잠언 4:1).”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잠언 5:1).“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잠언 13:1).
다윗이 책임 있는 아버지의 역할을 잘했다면 암논을 불러서 책망과 훈계 그리고 적절한 징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말에게는 아버지로서 아들을 잘못 키운 것에 대한 책임으로 딸에게 사과를 하고 위로가 될 만한 특별한 보상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버지 다윗은 그 사건을 조금도 다스리지 못하고 2년을 침묵으로 일관햇을까? 침묵이라기보다 방임, 무책임으로 보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버지 다윗의 숨겨져 있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 밧세바의 임신, 그 임신을 숨기기 위해 남편 우리야를 불러 들이고 밧세바와 동침을 유도하나 실패하자, 요압 장군에게 비밀서신을 보내 우리야를 최전방에서 죽게 하고,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한다. 은밀하게 진행된 일에 철퇴를 가한 사람은 나단 선지자였다. 나단의 지적과 책망을 듣고 다윗은 침상을 적시며 회개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 사건은 잊혀졌다. 그런데 다윗은 암논이 다말을 강간하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내버린 사실을 듣는다. 마치 자신의 범죄 현장을 보는 둣했다.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그 아들이 그 아버지를 쏙 빼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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