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그리스도교 분파 이야기/강 춘 오 목사(발행인) -28
2020/03/16 13:5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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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운동에서 파생된 회중정치 원리를 가진 교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본으로 한 회중교회주의 신앙선언 채택

회중교회주의 Congregationalism
회중교회(會衆敎會, Congregational Church)는 특정 지도자가 중심이 된 감독체제 교회(에피스코팔처치)나 교인 중에 지도자를 선택해 교회를 치리하는 대의제 교회(장로교회)가 아니라, 전체 회중의 의견에 따라 교회의 결정과 정치가 이루어지는 교회이다. 이를 조합교회(組合敎會)라고도 한다.

회중교회주의의 역사
회중교회주의는 17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운동의 한 부분에서 태동했다. 청교도운동의 목표는 영국 교회에서 종교개혁을 완성하는데 있었다. 이 가운데 회중주의자들은 종교개혁의 모토인 만인사제론을 실천하는데 큰 관심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만인사제론을 지지한 올리버 크롬웰의 후원으로 165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1658년 크롬웰이 죽고 난 후 그 세가 급격히 기울어져 1660년 왕정복고와 함께 폐지되었다. 그후 1689년 윌리엄과 메리가 즉위하고, 신앙의 자유 법령이 통과되어 비국교도들과 함께 회중교회주의자들도 관용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열정도 식어 18세기 전반에는 영국의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유명무실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새로운 활기를 얻어 1832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회중교회연맹이 결성되는 중요한 전한점을 맞이했다.
회중교회주의가 공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미국에서였다. 회중교회주의는 식민지시대 초기에 두 가지 형태로 미국에 심어졌다. 하나는 플리머스 식민지의 순례자들로, 자신들의 교회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영국국교회를 이탈한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국교회를 자기들의 이상에 따라 개혁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회중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연합에 힘썼다. 19세기 초에는 장로교도들과 연합하기도 하고, 1871년에는 ‘전국회중교회협의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이 협의회는 1931년 ‘그리스도교회총회’와 연합하고, 또 1961년에는 복음주의 개혁파 교회와 연합하여 ‘연합그리스도교회’를 탄생시켰다. 이것은 독일 루터파와 개혁교회의 배경을 가진 강력한 공동체로서 유명한 현대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나 폴 틸리히 같은 걸출한 신학자들을 배출했다.
회중교회는 전세계적인 교회로 발전하지는 못했으나 영어권의 모든 나라에는 전파되었다. 회중교회는 1925년에 캐나다 연합교회가 형성되는데 도움을 주었고, 1947년 남인도교회 설립에 역할을 했으며, 1970년대에는 ‘국제회중교회연합회’를 통하여 네덜란드와 스웨덴 등의 형제교회들과도 유대를 다졌다.

회중교회의 질서와 원칙들
회중교회는 성서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선교에 항상 중요성을 둔다.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가 그렇듯이 세례와 주의 만찬 만을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정된 성례전으로 간주한다. 또한 유아세례도 인정한다. 주의 만찬은 보통 한달에 한 번이나 두 번 행해지며, 설교와 성례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회중교회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 강조된다.
1. 회중교회는 특수한 회중의 영적 자율성의 원칙을 중요시한다. 모든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같이 모여 종교적 명령들을 지키며, 상호간의 교화와 거룩을 조장하며, 온 세상에 복음을 영존시키고 보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를 증진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또 신자의 각 단체가 이러한 것을 목적으로 모인 단체이면 그 단체는 올바른 그리스도 교회임을 믿는다.
2. 회중교회는 신약성서가 명백한 성문의 형식으로, 또는 사도들과 사도적 교회의 모범과 실천사항들로서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조목들과 그리스도 교회를 다스릴 수 있는 필요한 질서와 원칙들을 담고 있다고 믿으며, 인간의 전통과 교부들과 회의들과 교회 법률과 신조들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생활에 대하여 아무 권위도 갖지 않음을 믿는다.
3. 회중교회는 교회의 기초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인으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라는 인식에 기초한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며, 교회의 역원목회자 들은 그리스도 아래에서 그의 법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다스리도록 임명을 받았으며, 또 그들이 종교적 신앙과 실천에 저촉되는 모든 질문들에 있어서 호소할 곳은 성서뿐임을 믿는다.
4. 회중교회는 신약성서가 개체 교회마다 그 자체의 역원들을 선택하며 그 자체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권위에서 독립하며 또 모든 권위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음을 믿는다. <중략>
10. 회중교회들은 회원들이 한 몸의 지체들로서 서로서로 친교를 나누고 확대한 사랑을 즐기며 그리스도인의 일을 추진하는 것이 교회들의 의무이지만, 어느 교회나 교회 연합이 어느 한 개체 교회의 신앙이나 기강을 방해할 권한을 갖지 않으며, 다만 신앙과 기강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떠난 사람들을 분리시킬 수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회중교회 신조
1. 케임브리지 헌장(1648년)
케임브리지 헌장(Cambridge Platform)은 영국의 청교도 칼빈주의자들 중에서 회중교회 제도를 채택한 사람들이 영국의 식민지 뉴잉글랜드 주로 이민해온 회중교회 정치 헌장이다. 이들은 이민 와서 회중교회를 세우고 1646년 9월 1일 최초의 노회를 설립했는데, 그것이 케임브리지 노회이다. 이 노회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그대로 받아 회중교회 신조로 삼았으나 교회 조직과 행정은 회중교회 형식을 취했다.
케임브리지 헌장의 특색은 개체 교회의 자율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개체 교회는 자발적으로 모여든 신자들의 자발적인 합의에 따라 조직되었는데, 그 합의를 계약이라고 불렀다. 이 계약은 단순히 계명에 따라 같이 예배하며 피차 형제애에 충실할 것을 담고 있다.
개체 교회는 신앙고백이나 교리 문제에 있어 대체로 자유로워 타 교회나 노회의 간섭을 받지 않았고, 개체 교회의 행정은 완전독립에 가까운 것이었다.
처음에는 직제를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했으나, 나중에는 교사와 장로의 직제가 없어졌다.
이 헌장은 제1장 교회 행정 체제, 제2장 개체 교회의 공동교회적 본성, 제3장 지상의 가시적 교회, 제4장 가시적 교회의 체제와 교회 계약, 제5장 교회의 권의 주체, 제6장 교회직제, 제12장 회원의 교회 가입, 제15장 교회들 사이의 친교 등이 명시되어 있다.

2. 사보이 선언(1658년)
회중교회는 일찍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받았으나, 정치와 조직 면에서는 장로교와는 달리 개교회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1648년 케임브리지 헌장에 이어, 1658년에 런던의 사보이관에서 사보이 선언(The Savoy Declaration of the Congregational Church)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0장에 “복음과 그 은혜의 한도”라는 제목을 첨가하고 또 몇 가지 조항을 수정한 것이다. 그래서 회중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34장으로 되어 있다.
제20장 복음과 그 은혜의 한도에 관하여
①  행위의 계약이 죄 때문에 파괴되어 사람에게 불리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선택된 자를 불러서 신앙과 회개를 갖게 할 방편으로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의 약속을 그들에게 주기를 원하셨다. 이 약속에서 복음은 그 본질에 관하여 제시되었으며, 죄인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② 그리스도의 이 약속과 그로 말미암은 구원은 다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 또 그 말씀을 통해서만 계시되었다. 자연의 조명만으로는 창조와 섭리의 역사가 그리스도와 그를 통한 은혜를 발견하게 해주지 못하고, 다만 일반적 혹은 애매한 방법으로밖에 조명할 뿐더러, 그 약속과 복음에 의한 하나님의 계시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그것으로 구원의 신앙이나 회개를 얻기는 더욱 어렵다.
③ 죄인들을 위하여 주신 복음의 계시는 그것을 받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복종을 위한 약속들과 교훈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선한 기쁨에서 나온 것이어서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적당하게 개선하기 위한 어떤 약속이나, 또는 자연적으로 받은 일반적 조명과는 혼동될 수 없는 것이다.
④ 복음이 그리스도와 구원의 은혜의 외견적인 방편이며, 또 아주 충족한 것이지만 죄 가운데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거나 살아나고 혹은 중생하여 하나님에게로 가는데 충분하고 유일한 방편은 성령의 불가항력적이고 효과적인 역사 뿐이다.

한국기독교와 회중교회
미국 회중교회는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하바드 대학교, 예일 대학교, 윌리엄스 대학교 등 유수한 대학들을 설립했다. 그러나 한국에 선교사를 직접 파송하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에는 1886년 회중교회가 창설되었으나 1904년 러일 전쟁 이후 일본 조합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1910년 한일합방 조약 이후 조선을 전도지역으로 선정하고 서울과 평양에 조합교회를 설립했다. 이 조합교회는 조선총독부의 예산지원으로 유지되다가 1921년 다시 조선회중교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조합교회의 친일 행위가 문제가 되어 1945년 해방과 함께 해체되었다. 오늘날 회중교회주의 정치원리를 가진 교회는 ‘회중교회’ 외에도 침례교회, 그리스도의 제자회, 그리스도의교회, 형제교회 등 다양한 교단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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