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1950년 6월 25일 북한공산군의 기습남침으로 벌어진 6·25 전쟁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기까지 3년 1개월 2일동안 벌어진 6·25전쟁으로 한국군은 전사자 137,899명, 부상자 450,742명, 실종자 32,838명이고, 유엔군은 전사자 40,670명, 부상자104,280명, 실종자 9,931명의 희생자가 났다. 또 민간인도 사망자 373,835명(학살자 포함), 부상자 229,625명, 납치자 84,532명이고, 행방불명자 303,212명에 이른다.
그리고 피난민 320만, 전쟁미망인 30만, 전쟁고아 10만여명에 이르렀다. 물론 북한군과 중공군에도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1천만에 이르는 이산가족을 남긴 것이 6·25전쟁이다.
그런데 북한은 6·25 기습남침을 앞두고 1950년 6월 7일 방송을 통해 ‘평화적 조국통일 호소문’이란 것을 발표했다. 이 호소문은 해방 5주년 기념일에 최고입법회의를 열기 위하여 8월 5일에서 8일 사이에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자며 이를 토의하기 위하여 6월 15일에서 17일 사이에 남북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자 회의를 해주 또는 개성에서 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또 북한은 6월 19일에 방송을 통해 ‘남북 국회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 제안’을 발표했다. 남한이 이에 동의한다면 6월 21일 서울 또는 평양에서 남북한 국회의 대표들이 회합을 갖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위 평화적 해결을 제안해 놓고 그리고는 바로 6월 25일 새벽 4시에 휴전선 전역에서 남침한 것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자들은 상대를 속이기 위해 언제나 '위장평화'를 앞세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6·25로 인한 민족분단의 70주년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70년은 공산주의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기간이다. 그 70년간 세계는 공산주의의 망령에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시간이었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70년간 북한공산집단의 독재에 인민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종교, 결사, 언론, 표현에 있어서 어떠한 자유도 누릴 수 없었다. 종교, 결사, 언론, 표현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당연히 인권의 보장도 없다. 이런 사회에서 억압받는 민족을 구원하는 것이 민족교회의 책무이다. 6·25 70주년을 맞아 앞두고 북한의 태도가 이상하다. 온 국민이 경계심을 높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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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6·25 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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