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중세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던 시대이다. 그래서 경건과 영성생활을 위해 수도원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남·녀 평신도 공동체들도 있었다. 최초의 여성 영성 공동체는 ‘베긴회’(Beguines)이다. 베긴회는 과부나 미혼 여성 및 귀족과 상인의 딸들이 통일된 복장을 하고 청빈과 자선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생활하거나 홀로 생활하면서 세속 사회에서 수도원적 경건생활을 했다. 12세기 말과 13세기 초에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이 ‘여성 종교운동’에는 상류층 내지 중산층 출신의 미혼으로, 직업이 없고 영성적으로 이상주의적인 다수의 여성들이 다양한 종교적 활동에 정례적으로 참여하는 것 외에 병자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봉사, 간병인, 아이돌봄이 등의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베긴회는 주로 각기 10명에서 12명으로 구성된 수 백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가운데 ‘여성(신부 新婦) 신비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세교회는 이들을 ‘이단적 영성주의’로 규정하고 기존 수도회인 시토회나 도미니크회 및 프란체스코회 등에 통합시켜 수도회의 감독을 받게 했다. 그리하여 베긴회의 대다수는 매우 온건한 정통 교리를 추종했다. 그러나 기존 수도회에 통합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당시 이단으로 간주된 왈도파나 카타르파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부 베긴회 수녀들이 수용했던 이원론적 이단은 “여성이 영성적으로 남성과 동등하며 종교적 권위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들의 교리적 토대는 본질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각각 물리적·신체적 조건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하나님 앞에서, 또는 천국에서 똑같은 신성한 영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카타르파는 종교 의식에서 여성에게도 사제가 집전하는 종교 의식을 용인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다.
◇카타르파 베긴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인간은 이 현세에서 완전히 죄가 없고 더 이상 은총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대단한 완전함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이들은 중세의 성(性) 윤리가 교회의 고인물이라고 재해석하고, 일반적인 헌신자들이 후손을 낳기 위해 결혼하는 것을 제외하고 자식을 낳지 않아도 되며 자신의 육체로 원하는대로 행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들은 그때 이미 피임 및 유산이라는 관행을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이것들을 금지한 가톨릭교회의 격렬한 비판을 초래했다. 이리하여 13세기 중엽 교회는 이들 이단의 영향력 아래 있던 베긴회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베긴회는 남성 평신도 공동체도 있었다. 이를 ‘베가르회’(Beghards)라고 한다. 베가르회는 교회의 지도와 감독을 떠나 공동생활과 탁발을 시행했고, 민중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가톨릭교회의 성직위계제도를 비판했다. 중세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인 셈이다. 그리하여 베긴회와 베가르회는 결국 1312년 교황 클레멘스 5세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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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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