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이덕주 교수의 ‘전쟁의 과거에서 평화를 내다보기
2020/07/07 15:5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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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제일교회의 무너진 담벼락 앞에 선 왜곡된 신앙

본고는 한복협 6월 월례회 중 이덕주 교수가 발제한 ‘전쟁의 과거에서 평화를 내다보기-철원 기독교 유적지 답사를 통하여’ 중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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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주 교수(전 감신대 교수)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부탁받은 강연제목은 ‘6·25전쟁의 회고와 전망’이란 주제 가운데 ‘전망’ 부분이었다. 과거를 공부하는 역사학도에 ‘전망’은 수용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내가 예언자라면 모를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미국 워싱턴 웨슬리신학대학에서 예언서를 강의했던 구약학자 부르스 버치(Bruce Birch)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기억과 전망 사이가 예언자의 자리다.” 이사야도 그렇게 예레미야도 그러했다. 망국의 위기시대를 살았던 구약의 예언자들은 과거의 기억, 특히 오늘 당하고 있는 불행한 현실의 원인이 된 과거의 잘못된 행실을 들춰내 고발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과거를 회고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내용의 반 이상을 채운 후 “다가올 하나님의 날을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끝맺었다. 긴 회고와 짧은 예언, 그것이 예언자 메시지의 특징이었다. ‘기억(memory)과 전망(vision) 사이’. 그것은 예언자의 자리만 아니었다. 역사학자의 자리이기도 했다. 과거에 이루어진 일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탐구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과거에서 지혜를 얻어 오늘을 창조적으로 살고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함이다. “바른 기억이 바른 미래를 연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학에서 기억과 전망은 떼어놓을 수 없는 가치이며 목적이다. 전망하기 위해 기억하고 기억을 바탕으로 전망한다. 그런 맥락에서 ‘6·25전쟁과 관련한 기억과 전망’을 구하기 위해 70년이 지났어도 전쟁으로 인한 아픔과 슬픔, 폐허와 상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철원을 찾았다.
철원은 정말 볼 것이 많다. 철원과 한탄강 주변으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 우리 조상들의 살림터와 고인돌 유적이 널려 있고 비록 전쟁으로 인해 많이 파괴되고 자유롭게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후삼국시대 이 곳에 태봉국 수도를 건설한 궁예의 흔적과 고려와 조선시대 유적들을 만날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 민족 수난, 특히 해방 후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민족 갈등과 고난의 역사를 그 어느 곳보다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철원이다. 그런 민족 수난과 전쟁으로 인한 현장에서 이루어진 복음 선교의 역사 흔적들을 살펴보는 것이 철원 여행의 목적이다. 더욱이 철원 여행에서 우리의 옷깃을 여며야 하는 것은 일제말기와 분단, 전쟁을 거치는 동안 이 지역에서 목회하던 목회자와 교인들 가운데 ‘순교자’ 12명이 나온 곳이기 때문이다.

백마고지와 노동당사, 그리고 무너진 예배당
서울에서 철원 가는 길은 보통 의정부로 해서 포천과 운천을 통해 가는데 공휴일엔 교통체증으로 의정부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서울 서부에 사는 사람은 아예 자유로를 타고 문산까지 가서 적성과 전곡, 연천을 거쳐 가는 길이 편하다. 조금 돌지만 비교적 막히지 않고 또 3년 전부터 신탄역 북쪽으로 철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개방되어 지뢰밭 한가운데로 북한 땅을 지척으로 보면서 갈 수 있어 처음부터 철원 답사의 맛을 볼 수 있다. 이 길로 가다가 철원에 들어가기 직전, 6ㆍ25전쟁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였던 백마고지를 보고 갈 수 있는데 거기서 보면 전쟁으로 철원평야를 잃은 김일성이 너무 분해서 사흘간 먹지도 않고 그 평야를 내려다보며 울분을 토하고 갔다는 김일성고지가 멀리 보인다. 백마고지에서 나와 5분 정도 달리면 옛 철원읍 도심지에 도착한다. 거기서 길이 두 갈래로 갈리는데 왼쪽 길은 군인들의 통제하여 비무장지대에서 농사짓는 지역 사람들이나 사전에 출입 허락을 받은 관광객이나 성묘객들만 들어갈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부서진 기차가 서 있는 온정리역과 비무장지대 안 궁예 성터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해방 전 온정리에도 교회가 있었지만 그 터는 철조망으로 바뀌었다. 검문소에서 신철원 동송으로 가는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바로 유명한 철원 노동당사 건물이 보인다. 38선 이북이었던 철원은 해방 후 당연히 북한 영토로 들어갔고, 노동당에서 ‘한 동리에 쌀 2백 가마씩’ 공출하고 지역 주민들을 동원하여 한 달 만에 지었다 한다. 공산 치하 5년 동안 많은 우익 인사와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잡혀와 취조를 받기도 했는데 전쟁 때 폭격을 맞아 내부는 완전히 파괴되고 뼈대만 남았다. 철근을 쓰지 않고 벽돌과 시멘트로만 지었는데도 골격은 그대로 남아 있다.
 노동당사에서 남쪽으로 바로 보이는 곳에 철원제일교회 유적이 남아 있다. 본래 철원읍에는 1899년 경 북장로회 선교사들이 먼저 들어와 교회를 세웠는데 1909년 감리교와 선교지역 분할협정을 맺으면서 이 지역을 남감리회 선교부에 이양하는 바람에 철원은 감리교회 선교지역이 되었다. 그래서 해방 전까지만 해도 예배당 주변으로 남감리회 선교부 사택과 선교부에서 운영하던 병원과 학교, 여자관 건물이 있어 이곳이 김화 평강 포천 연천을 포함하는 철원 선교의 중심 거점이었음을 보여주었다. 1937년 지은 철원제일교회 예배당 설계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 선교사 보리스(W.M. Voris)가 맡았는데 그의 작품으로 아직 남아 있는 서울의 이화여대 대강당과 석조 교사 및 신세계백화점 등에서 볼 수 있듯 고전적인 낭만파 성향의 웅장미가 물씬 풍겨나는 석조 고딕 건물이었다. 1,200평 대지에 3층 건물로 지었는데 벽재를 화강암과 화산석으로 처리하여 견고성과 건축미를 더했다.
 그러나 이 예배당 건물 역시 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동쪽 벽면과 남서쪽 모서리 기둥만 남고 모두 무너졌다. 주차장으로 변한 교회 앞마당에서 예배당까지 돌계단이 남아 있는데 중간 쉼터를 경계로 양쪽에 12단씩, 모두 24단으로 되어 있다.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사도를 상징한 것이겠지요.” 철원 답사를 안내하는 장흥교회 이금성 장로의 설명이 그럴 듯 했다. 옛날 우리 선배들은 계단을 쌓을 때도 성서적 의미를 새겨 넣었던 것이다. 비록 지붕은 없어졌지만 예배당 입구, 현관에 들어서니 바닥의 색타일이며 2층 대예배실로 오르던 계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일제말기 경기 북부에서 제일 아름다웠다는 예배당 건물의 위용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주일학교 교실로 사용했다는 1층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기초석만 남고 무너져 내린 벽면 흔적을 통해 2백 평에 달하는 예배당 규모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 폐허 한 가운데 서 있어 보라. 백 년 전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던 교인들의 찬송과 기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조금 더 숨을 죽이고 들으면 삼일운동 때 지역 주민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벌인 후 ‘철원애국단’을 결성해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다가 체포된 이 교회 박연서 목사와 청년 교인들의 속삭임이 들리고, 일제말기 여기서 목회하다가 신사참배를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끌려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교한 강종근 목사의 사자후(獅子吼),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하는 일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신사참배는 하지 말라!”는 외침도 들린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이 터지고 예배당이기에 안전하리라 싶어 이곳으로 피신했다가 미군 폭격으로 몰사한 철원 주민들의 아우성도 들린다.
 그렇게 무너져 내린 철원제일교회 담벼락은 오늘 우리에게 예루살렘 ‘통곡의 벽’과도 같다. 바벨론과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군대의 공격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은 기초를 쌓았던 벽만 남았고 오늘날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자기 죄를 회개하며 애통하는 성스런 장소로 남았다. 이방민족에게 공격을 당하고 성전이 무너진 것이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인 것을 깨닫고 통회 자복하는 장소가 되었다. 철원제일교회 무너진 담벼락도 마찬가지다. 일제말기 신앙 양심과 지조를 저버리고 신사참배를 수용하며 전쟁 폭력에 동참했던 교회 지도자들의 신앙훼절, 분단시대와 전쟁 시기에 군인들의 전쟁과 별개로 민간인들마저 이념과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편을 가르고,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의 피해자가 되고, 다시 피해가자 가해자가 되어 서로 죽이는 일에 몰두하다가 그 후손 대까지 증오와 불신의 유산을 남겨 준 ‘전쟁세대’의 과오를 반성하고 회개할 일이다. 통곡의 벽에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함으로 예루살렘이 이름 그대로 ‘평화의 도성’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하는 순례자들처럼, 아직도 분단된 한반도 휴전선 북방 한계선에 전쟁 폭격으로 무너진 채 남아 있는 철원제일교회 담벼락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이기적이고 당파적이며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편 가르고 살았던 왜곡된 신앙을 회개하고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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