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한수한사진.jpg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마도 제일 좋아하는 것 가운데 하나를 들라 하면 땅이 그 중 하나가 분명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과연 남다르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은 공시가로 한 평에 1억 8000만원에 이르는 서울 명동인데 작년보다 두배로 올랐다고 한다. 반면 가장 싼 땅은 진도에 있는 것으로 한 평당 210원이라고 한다.
땅값은 오를 때와 내릴 때의 가격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투기용으로 가장 좋은 대상이다. 오를 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하지만 내리는 것은 거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전체 땅 값은 2176조에 달하지만 서울시의 땅값만 661조에 달하고 거기의 한 평당 땅값은 2000만원을 넘는다고 한다. 이 가격은 2002년도 2월 26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난 서울의 전체 땅 값이 무려 390조에 비해 두 배나 올랐고 그 가운데 서울의 강남구 땅 값만 152조로 부산시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고 한다(조선일보 2011년9월19일).
서울시 전체 아파트가 163만 9519가구라고 하는데 절반은 거의 9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가장 싼 전남의 진도에 사는 사람과 서울 강남구에 사는 사람은 현상적으로는 같은 한국 땅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같은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 셈이다. 전자는 그냥 흙에서 살고 있고 후자는 금덩어리 위에서 살고 있다고 해야 한다. 서울의 땅값이 그 정도라면 아마도 아파트 건물들은 그냥 콘크리트가 아니라 금과 다이어몬드로 장식이 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 건축비 원가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건축할 때 드는 비용을 포함하면 상상하기 힘들만큼 땅의 가격이 비싸다.
이런 통계는 한국 사람들이 가지는 땅이라는 공간 개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는 듯하다. 유달리 우리는 땅에 한이 많은 민족인 것처럼 비친다. 과거 옛 조상들이 가졌던 땅에 대한 관심과 현재 우리가 가지는 땅에 대한 관심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땅과 관계할 때, 땅을 거주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고 반대로 점령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거주를 가리켜 ‘거함’이라 하고 점령을 가리켜 ‘차지함’이라 한다.
거주개념과 점령개념으로 생각해 본다면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하는 땅의 개념은 확실히 ‘거하는 공간개념’이 아니라 ‘점령개념’이 매우 강하다. 즉 공격적인 점령개념이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공통적으로 가지는 땅의 개념은 ‘거주개념’보다는 ‘점령개념’이 강한듯 하다. 예를 들어 특히 서울에서 어느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분양하면 떼거리로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모이는 이유는 집을 사기 위함이다. 집을 사기 위함이라면 사실은 그 모이는 분들이 지금 거할 공간이 없는 분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실은 지금 잠잘 집을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집 없는 자들이 집을 분양 받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거할 공간을 지금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땅을 가지고 돈을 벌기 위해서고 또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이 정신없이 사는 방식은 지금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보다 더 넓히기 위해서 남이 거해야 하는 땅을 점령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지금 점령하고 있는 공간을 내가 차지했으니 있는 힘을 다해 더 점령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자건 불신자건 대체로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은 공간점령, 즉 땅 넓히기가 아닐까? 직장에 간신히 취업이 되어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지만 뭘 위해서 일할까? 아파트 사기 위해서고 은행에 융자 받은 융자금 갚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소박한 꿈이다. 그러나 그 내면은 지금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이런 현상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지만 뭘 위해서 일까? 현재는 1만명 모이는데 1만5천명 목표를 위해서이다. 예배당을 신축한다고 하지만 뭘 위해서 일까? 1만5천명 목표를 위해서라면 놀라운 일이다. 지금 모이는 1만명도 엄청나게 많은데 1만5천명을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 개신교 교회가 다른 교회의 교인들을 점령하여 지금보다 더 넓은 공간을 점령하기 위해서 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단순하고 원시적으로 가시적 공간을 넓히려 한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공간 넓히기에 큰 관심을 가진다면,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우리는 약간 고상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두고 말하는데 그러나 실상 내용은 거의 똑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자기들 모이는 교회의 활동 공간을 넓히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듯하다. 성도가 500명 모이는 공간보다 1000명 모이는 공간이 훨씬 보기 좋을 것이다. 불신자들은 살고 있는 20평 아파트 공간에서 30평으로 넓히기 위해 오늘도 죽어라고 노력한다. 이들이 눈에 보이는 공간을 넓히기 위해 노력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좀 더 고상한 방식으로,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넓히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내용적으로는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땅을 ‘점령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땅을 하나의 ‘허공’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땅이란 허공 또는 공간 개념인가? 현상적으로 보면 땅은 허공이다. 점령해야 하고 차지해야 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땅이 점령이나 차지의 대상으로 보이는 것은 나와 땅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땅과 관계하려고 할 때 땅은 하나님 없는 허공으로 보이게 되고 점령의 공간으로, 내가 차지해야 하는 특정 공간으로 보이게 된다.
내가 직접적으로 땅과 관계하려고 할 때 땅은 점령해야 되는, 혹은 차지해야 되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땅은 내가 직접 관계해야 되는 대상이 아니다. 땅은 처음부터 부여 받았다.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점령하거나 차지해야 할 허공이 아니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동안 머무는 시간적 존재이다. 땅은 더 이상 공간이 아니라 시간적 존재이다.
창조주를 인정한다면 땅은 더 이상 허무한 공간이 아니라 시간적인 존재로 이해된다. 내가 창조주를 만나게 되면 땅은 내가 점령해서 천년 만년 자손 만대 물려주고, 내가 획득했으니 내가 지켜야 하는 공간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 다시 돌려줘야 하는, ‘거주하는 시간’의 개념으로 보인다. 땅은 잠시 동안 거하는 시간이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땅 : 점령인가, 거하는 시간인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